‘국민화가’ 박수근의 25억~30억원대(서울옥션 추정가) 그림이 민주화 시위로 잔뜩 움츠러든 홍콩 미술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이 다음달 5일 홍콩 에이치퀸스빌딩에서 열리는 제30회 홍콩 경매에 박수근의 유화작품 ‘공기놀이하는 아이들’(43.3×65㎝)을 출품한다.
박 화백이 1960년대 초반에 제작한 이 그림은 공기놀이를 하는 세 소녀의 모습을 특유의 화강암 같은 화면에 담아냈다. 최근 김환기의 작품이 국내외 미술품 경매시장을 장악하자 박수근의 작품 거래가 다소 위축되면서 시장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고가의 작품이다. 아시아권 개인 컬렉터가 2009년 4월 서울옥션 경매 부산경매에서 20억원에 낙찰받아 소장해오다 10년 만에 다시 경매시장에 내놨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박수근의 작품 중 일이 아니라 놀이와 관련된 몇 안 되는 작품”이라며 “팔꿈치를 다리에 걸치고 앉은 양쪽 두 명의 소녀와 가운데서 공기를 주워 모으고 있는 소녀의 여유로운 표정에서 천진무구함이 짙게 묻어난다”고 설명했다.
이번 홍콩 경매에서 지난 10년 동안 ‘빨래터’(45억2000만원) 위작 논란으로 주춤했던 그의 그림값에 다시 힘을 얻어줄지 그 결과에 미술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빨래터’의 위작 의혹은 법정 공방 끝에 2009년 법원이 ‘진품으로 추정된다’고 판결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빨래터’ 충격으로 박 화백 그림의 가격은 김환기와 이중섭, 이우환 등에 뒤처졌다. 김환기의 빨간색 점화(85억3000만원), 이중섭의 소 그림(47억원)이 최고가를 경신하는 동안 박수근의 작품은 상승 탄력을 좀처럼 되찾지 못했다. 박수근의 1961년 작 ‘시장의 사람들’은 지난해 11월 K옥션에서 열린 경매에서 시작가 39억원을 넘지 못하고 끝내 유찰됐고, 올 상반기 경매 낙찰총액도 29억원에 그쳐 김환기(140억원), 이우환(60억원)에 밑돌았다.
하지만 최근 홍콩 시장에서 박 화백 작품에 대한 컬렉터들의 베팅이 늘고 있다. 지난해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그의 소품 ‘무제’가 466만홍콩달러(약 6억4000만원)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다. 서민적 소재를 향토색 짙은 색감과 특유의 우둘투둘한 기법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박 화백의 작품이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평생 성실한 작가로 일관했던 삶이 감동을 주기 때문에 박 화백의 향후 그림값은 한국 경제의 위상에 걸맞게 점차 탄력을 받을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 등 외국 애호가들의 베팅이 이뤄지면 신고가 행진을 이어갈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국내 근현대 미술품 경매 최고가 ‘톱10’ 가운데 박 화백의 작품은 한 점이지만 10억원을 넘는 작품은 10여 점에 달한다. ‘빨래터’를 비롯해 ‘농악’(20억원) ‘앉아 있는 소녀’(19억6000만원), ‘목련’(16억4500만원), ‘아이를 업은 소녀와 아이들’(15억2000만원), ‘나무와 두 여인’(15억원), ‘한가한 날’(12억4000만원) ‘노상사람들’(12억원) 등이 고가 작품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옥션은 이날 박 화백의 작품과 함께 김환기의 반추상화 ‘산월’, 22억원 이상으로 평가한 이우환의 추상화 ‘동풍’, 김구림의 1987년 작 ‘나무’, 이건용의 신체 드로잉 등 총 55점(약 90억원)을 경매에 올린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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