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사고팔듯…개인, 스타트업 투자 쉬워진다

입력 2019-09-26 17:45   수정 2019-09-27 01:07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개인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쉽게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벤처 투자자금을 공모해 주식시장에 상장한 뒤 주식처럼 실시간 거래하는 ‘기업성장투자기구(BDC)’를 통해서다. ‘제2의 벤처붐’ 정책의 일환으로 모험자본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다.

비상장·코넥스·코스닥 투자하는 BDC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금융감독원, 증권사, 자산운용사, 벤처캐피털(VC), 벤처기업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모험자본 활성화를 위한 자본시장 간담회’를 열고 BDC 도입을 골자로 한 혁신기업 자금 조달체계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BDC는 스타트업·벤처 등에 투자하는 일종의 간접투자펀드다. 일정 요건을 갖춘 금융회사가 BDC를 만들어 공모를 통해 상장(IPO)한 후 기업 등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금융위는 BDC 투자 대상을 지난해 11월 발표한 초안보다 확대하기로 했다. 주 투자 대상에 비상장 기업과 코넥스뿐 아니라 시가총액 2000억원 이하 코스닥 기업을 포함하기로 했다.

BDC 운용 주체로는 기존에 논의된 증권사, 자산운용사 외에 VC가 포함했다. 연평균 수탁액 1500억원 이상, 자기자본 40억원 이상, 운용전문인력 2인 이상 등의 요건을 맞춰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한다.

금융위는 미국처럼 BDC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기획재정부와 논의 중이다. 미국은 수익의 90%를 배당하는 BDC에 법인세 혜택을 주고 있다. 은 위원장은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투자실패 책임에 대한 우려로 모험투자를 주저하지 않도록 감사원의 ‘적극행정 면책제도’를 벤치마킹한 면책제도 개편방안을 11월까지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2의 벤처붐’ 이끌까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BDC를 놓고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그동안 개인들이 벤처기업에 투자하기 위해선 장외시장이나 만기가 긴 벤처펀드 등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환금성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BDC는 주식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는 데다 코스닥과 코넥스, 비상장 등 다양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어 새로운 벤처투자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스타트업이 IPO까지 가는 데 10년 이상 걸리는 만큼 완충작용을 할 BDC가 탄생하면 벤처생태계의 선순환 고리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DC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부정적 전망도 나온다. 올 상반기 벤처투자액은 1조8996억원으로 작년 상반기(1조6327억원)보다 16.3% 증가했다. 반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업계에선 연말까지 4조원 이상의 자금이 스타트업 등 벤처로 흘러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공모로 채워진 BDC는 결국 기존 VC 자금을 받지 못한 소외 영역에 투자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기술이 있고 성장성 있는 기업들은 정책 자금을 줄세워 골라 받을 정도로 자금이 몰려든다”며 “BDC가 좋은 기업에 투자하지 못해 주가가 지지부진하면 결국 ‘코스닥벤처펀드’처럼 시장에서 외면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주도로 지난해 만들어진 코스닥벤처펀드는 전체 투자금의 50% 이상을 코스닥과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공모형 코스닥벤처펀드 설정액은 연초 6958억원에서 지난 2일 5066억원으로 1892억원(27.2%) 쪼그라들었다.

하수정/오형주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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