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예진의 토요약국] 발암물질 검출된 '잔탁'의 비밀

입력 2019-09-27 09:34   수정 2019-09-28 00:42

고혈압약에 이어 위장약에서도 발암추정물질이 검출돼 난리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은 라니티딘 성분의 ‘잔탁’(사진)인데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 막대한 수익을 올려준 제품입니다. GSK를 거대 제약사로 만들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사실 잔탁의 성공 스토리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습니다. 잔탁의 시초를 알기 위해서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 영국 약리학자 제임스 블랙은 10년 동안 위산 과다분비 억제제를 연구한 끝에 ‘시메티딘’이라는 물질을 개발하는 데 성공합니다. 위에서 분비되는 히스타민2 수용체를 억제하는 길항제입니다. 시메티딘은 GSK로 합병되기 전 영국 제약회사 스미스클라인이 1977년 ‘타가메트’라는 제품으로 출시합니다. 블랙은 이 공로로 198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죠. 하지만 1982년 경쟁사인 글락소가 신종 위궤양 치료제를 내놓으면서 타가메트는 왕좌를 빼앗기게 됩니다. 이 제품이 이번에 문제가 된 ‘라니티딘’ 성분을 기반으로 한 잔탁입니다.

라니티딘은 시메티딘의 구성 요소를 조금 바꾼 것이었는데요. 워싱턴대 교수인 미켈 보쉬 야콥슨은 <의약에서 독약으로>라는 책에서 글락소 연구원들이 연구개발에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 잔탁을 새로운 약물처럼 특허 승인을 받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블랙이 공들인 연구 결과를 글락소가 거저 가져갔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사실을 사람들은 알 리가 없었습니다. 글락소는 마케팅의 귀재였는데요. 글락소 회장인 폴 지롤라미는 잔탁을 타가메트보다 1.5배 비싸게 팔았는데 사람들은 비쌀수록 좋은 약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글락소는 막대한 홍보 비용을 지출해 잔탁이 타가메트보다 더 우수하다고 홍보했고 이런 전략은 맞아떨어졌습니다.

잔탁의 별명은 영어로 ‘미투(me too)’였는데, 타가메트를 따라했다는 뜻이었으면 좋으련만 너도나도 그 약을 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고 하네요. 글락소는 역류성 위염과 식도염의 심각성을 알리면서 약을 홍보했고 잔탁의 매출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스웨덴 제약사 아스트라는 1989년 미국 MSD와 제휴해 ‘프릴로섹’이라는 새로운 위궤양 치료제로 맞불을 놓았는데요. 히스타민2 수용체 길항제인 타가메트, 잔탁과 작용 기전이 다른 프로톤펌프 억제제(PPI)입니다. 아스트라는 PPI 제제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막대한 마케팅비를 투입했습니다. 위산 분비 억제제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안 제약사들은 1~2년에 한 번꼴로 신종 위산 억제제를 출시했습니다. 한마디로 ‘위산과의 전쟁’이었죠. 잔탁이 쉽게 성공을 가로챈 대가를 이제서야 치르는 것일까요. 라니티딘은 이제 발암물질과 전쟁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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