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호수 그리고 돌…자일리톨의 나라에도 '3多'가 있더라

입력 2019-09-29 15:11   수정 2019-09-30 09:55

핀란드를 말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이 과거 큰 인기를 끌었던 자일리톨(Xylitol)껌을 먼저 말한다. 열풍과도 같았던 인기 덕분에 당시 여러 과자 브랜드에서 같은 이름의 제품을 여럿 내놓기도 했다. ‘핀란드에선 잠을 자기 전 아이들에게 자일리톨을 씹게 한다’는 타이틀이 아직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헬싱키 공항에 내리면서 자일리톨을 떠올렸다. 달콤하지만 치아에는 좋다는 마법 같은 성분처럼 핀란드에서의 추억은 달달하고 신비로웠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아름다움

북유럽의 관문과도 같은 나라 핀란드. 한때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북유럽 스타일의 많은 부분이 핀란드에서 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디자인 디스트릭트’를 시작으로 디자인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수도 헬싱키를 보면 더욱 그렇다. 헬싱키에 도착해서 고작 10여 분 거리만 걸어봐도 다른 유럽 국가들과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는다. 심플하지만 단순하진 않은, 과감한 컬러를 사용했지만, 너무 화려하지도 촌스럽지도 않은, 디자인과 컬러의 적정선을 유지하며 지어진 건물들과 그 사이로 놓인 길, 그렇게 세워진 도시가 온통 새롭게 보였다.

감동은 처음 찾은 명소에서 절정에 달했다. 핀란드의 남해안을 지켰던 요새 ‘수오멘린나(Suomenlinna Sea Fortress)’다. 헬싱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5분이면 도착하는 이곳은 스웨덴 왕국이 핀란드를 점령했던 1748년, 스웨덴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건설한 요새 섬이었다. 작은 섬 4개가 연결된 수오멘린나에는 여전히 막사와 성벽, 무기 등 전쟁에 대비했던 과거 군사 시설이 남아 있다.

하지만 놀라운 건 과거 요새의 모습과 당시의 시설을 보전하면서 이곳을 헬싱키 최고의 관광명소로 만든 핀란드의 힘이다. 수오멘린나 요새는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섬의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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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는 이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고 암석과 빛의 아름다움을 전하네
자연공원 같은 요새 '수오멘린나'…돌로 지은 '템펠리아우키오 교회'



섬에 도착하면 요새가 아니라 계절을 품에 안은 자연공원에 온 느낌이 든다. 어느 계절에 이곳을 찾든 핀란드의 계절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수오멘린나다. ‘수오멘린나’라는 이름이 핀란드어로 ‘무장해제’라는 뜻이라고 한다. 과거 핀란드에 쳐들어왔던 군사들을 무장해제했다면 현재는 핀란드를 찾는 관광객의 마음을 무장해제하게 한다. 수도 헬싱키와 지척이지만 말 그대로 딴 세상이다. 조급했던 마음과 분주한 발걸음을 일순간 멈추게 한다.

암석과 빛이 만든 예술품

핀란드를 말하면 자일리톨이 바로 따라 나오지만 그게 어떤 성분인지,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천연 감미료인 자일리톨은 놀랍게도 핀란드 나무의 대표 격인 자작나무와 떡갈나무 수목에서 채취한다고 한다. 알고 나니 신기하다. 자작나무는 핀란드에서 가장 흔한 나무다. 전국 어디를 가든 쉽게 볼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헬싱키 공항에 착륙할 때 활주로 주변에 길게 늘어선 자작나무 행렬이 보인다. 빽빽하게 어깨를 맞대고 하늘을 향해 길게 뻗은 나무가 인상적이다.


숲과 호수의 나라지만 돌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헬싱키 중심에 있는 암석교회 덕분이다. 크고 작은 암석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암석교회’라는 별명을 가진 ‘템펠리아우키오 교회(Temppeliaukio Church)’다. 이곳은 루터교 교리와 핀란드 자연환경의 조화를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 건축가 겸 가구 디자이너였던 티모와 투오모 수오말라이넨 형제가 지었다. 이들은 교회 터에 있던 암석을 쪼개 내부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대형 원형 유리로 천장을 덮어 자연광이 잘 들어 올 수 있는 교회 건축물로 설계했다. 2층으로 돼 있는데 어느 좌석에 앉든 자연스레 정면 강단과 마주하게 된다. 교회 내부는 화려하지 않다. 암석으로 지어진 독특한 구조와 내부가 지하에 내려와 있는 형태지만 빛이 가득한 실내가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티모와 투오모 수오말라이넨 형제는 실제로도 암석 자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의자도 최대한 단순하게 제작했고, 불규칙한 돌 표면이 돋보이도록 암석 외에는 교회의 흔한 장식도 모두 생략했다고 한다. 이런 디자인과 설계는 그들에게 있어 검소한 루터교의 원칙을 따르는 한 방편이기도 했다. 1969년에 지어져 비교적 현대의 건축물이지만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히며 신도가 아니어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거장 시벨리우스를 기념하다

헬싱키는 핀란드의 수도지만 명소가 대부분 밀집해 있어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도보로도 돌아볼 수 있다. 물론 시간을 들이는 정도에 따라 동선과 볼 수 있는 곳의 수는 다르다. 템펠리아우키오 교회에서 특별한 형태의 암석교회를 만났다면 루터란 대성당(The Lutheran Cathedral)에서 희고 거대한 성당을 만나보는 것도 좋다. 템펠리아우키오 교회에서 동쪽으로 약 1.7㎞ 떨어져 있어 도보로도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교회에 관심이 없다면 핀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에게 눈을 돌리자. 템펠리아우키오 교회에서 북쪽으로 1.6㎞ 거리에 시벨리우스 공원이 있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애국을 주제로 많은 곡을 탄생시킨 그는 핀란드인에게 영웅처럼 기억되고 있다. 시벨리우스 공원에는 강철로 만든 파이프 오르간 모양의 기념비와 함께 한편에 시벨리우스 얼굴을 본뜬 동상이 있다. 고즈넉한 공원이지만 600여 개의 강철 파이프로 이뤄진 기념비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시벨리우스를 깊이 있게 만나고 싶다면 시벨리우스 기념 홀에서 음악을 즐기는 걸 추천한다. 헬싱키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 떨어진 도시 ‘라티(lahti)’에 시벨리우스의 이름을 따 2000년 완공한 시벨리우스 홀(Sibelius Hall)이 있다. 이곳에선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클래식 공연이 연일 이어진다.

사우나가 핀란드에서 왔다고?

호수가 많아 레이크랜드라고 불리는 핀란드에는 국토 전역에 18만여 개의 호수가 있다. 그중 80%가 남부에 있다. 호수 주변은 자연스레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호수의 청정수와 함께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만든다. 어디를 가도 비슷하지만 단 한 군데도 똑같은 느낌은 없다.

가장 좋았던 곳은 단연 사이마(Saimaa) 호수다. 이곳의 면적은 약 4400㎢에 이른다. 1100만 명이 살고 있는 서울 면적이 약 605㎢니 7배가 넘는다. 길이도 길다. 약 500㎞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보다 길다. 외곽 둘레는 1만5000㎞. 워낙 큰 호수라서 이곳엔 섬도 많은데 약 1만4000개가 있다고 한다. 작은 바다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 넓은 호수는 빙하가 녹아서 형성됐다. 호수와 접한 도시도 많은데 유명한 곳으로는 미켈리, 사본린나, 요엔수 등이 있다.

어디를 가든 호수와 물이 가까이 있고, 뗄 수 있는 목재가 흔하다 보니 핀란드는 과거부터 자연스레 사우나 문화가 번성했다. 사우나라는 말도 핀란드어에서 왔다. 핀란드 사람들은 사우나가 일상이다. 인구가 약 556만 명인데 핀란드에는 인구와 동일한 숫자의 사우나가 있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약 300만 개의 사우나가 있다고 한다. 핀란드에선 사우나 실내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땀도 닦지 않고 찬물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밤 12시가 가까운 시간, 필자도 사우나와 호수를 들락거리며 핀란드 문화를 즐겼다. 단순히 사우나가 아니라 핀란드의 호수와 숲에 천천히 동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핀란드=글·사진 이두용 여행작가 sogno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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