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화신으로 변하는 광대…편견과 불통이 惡의 자양분

입력 2019-09-30 17:28   수정 2019-10-01 03:15

무명 배우 아서 플렉의 웃음은 늘 타인들과 엇박자다. 그가 요란하게 웃을 때 주변인들은 무덤덤하다. 다른 사람들이 깔깔 웃을 때 아서는 진지하다. 그는 한 템포 지나서야 웃는다. 그 웃음 끝에는 울음이 남는 듯하다. ‘아서’로 불리던 주인공은 스스로 ‘조커’로 칭한다. 조커란 그에게는 ‘조크(농담)를 하는 사람’이란 뜻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웃음 대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악의 화신’이 된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2일 개봉)는 코미디언을 꿈꾸던 아서가 희대의 악당 조커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DC코믹스의 슈퍼히어로 배트맨의 적수 조커를 탄생시킨 핵심에 ‘세상과의 불화’를 놓는다. 공감 결여와 소통 부족이 악의 자양분이라고 말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코모두스 황제 역으로 유명한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웃음과 눈물이 묘하게 어우러진, 역대 최고의 조커 연기를 펼친다. 피닉스는 하루에 사과 하나만 먹고 체중을 23㎏ 감량해 비쩍 마른 모습으로 나섰다.

고담시의 광대 아서는 코미디언을 꿈꾸며 열심히 일하지만, 정신질환으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사회부적응자다. 청소년들에게 뭇매를 맞고, 직장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한다. 성인들은 약자인 그를 감싸주지 않고 오히려 공격한다. 편견이 없는 어린이들만 아서의 코미디를 보고 웃지만, 그 웃음마저 아이의 엄마가 차단한다. 그나마 아서의 숨통을 틔우던 정신과 상담 기회마저 시의 예산 부족으로 사라진다. 아서는 부유한 시장 토마스 웨인(배트맨인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지만, 거부당하고 만다.

영화는 어린이가 아서를 보고 웃는 장면을 통해 편견에 사로잡힌 어른들을 질타한다.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사회제도도 비판한다. 지위와 빈부 격차에 따른 차별이 악의 씨앗이라고 경고한다.

조커의 악행은 억압받고 무시받는 하층민의 분노를 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커진다. 군중도 조커를 따라 폭동을 일으키고, 폭력을 행사한다. 무시받던 아서는 조커가 된 뒤 존재감이 커지고 희열마저 느낀다. 이는 앞으로 조커의 악행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임을 시사한다.

고담시는 1980년대 뉴욕시를 연상시킨다. 거리에는 낙서와 쓰레기가 뒤범벅돼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범죄가 들끓을 수밖에 없다. 1990년대 들어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이 낙서를 지우고 청소를 깨끗이 하면서 뉴욕의 범죄율이 크게 떨어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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