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 SK·현대가(家) 3세인 최모(31)씨와 정모(28)씨.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 지도층 재벌가 자제면서 해외유학 경험이 있는 마약사범이라는 점이다.
최근 불거진 지도층 자제들의 마약범죄 명단에 홍정욱 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의 10대 딸이 추가됐다.
홍 전 의원의 장녀인 홍모(18)양은 지난 27일 오후 5시 40분쯤 미국발 비행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면서 대마 카트리지 등 변종 대마를 밀반입하려 한 혐의 등으로 체포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진석 인천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홍양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없고, 초범으로 소년범인 점 등도 고려했다"는 이유에서다. 홍양은 구속영장 기각 후 인천구치소에서 귀가했다.
홍 전 의원은 딸의 마약 밀반입 의혹과 관련해 "모든 것이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의 불찰"이라며 사과했다.
홍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문에서 "못난 아버지로서 고개 숙여 사과드리며 제게 보내시는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면서 "제 아이도 자신의 그릇된 판단과 행동이 얼마나 큰 물의를 일으켰는지 절감하며 깊이 뉘우치고 있다"며 "무거운 책임감으로 제 아이가 다시는 이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철저히 꾸짖고 가르치겠다"고 했다.
예전에는 마약사범들이 유흥가 등 음지에서 주로 활동했다면 최근에는 재벌가 3세 등 가정이 유복하고 남부러울 것 없는 부유층 계층의 마약 적발이 늘어나고 있다.
어쩌다 10대까지 마약류의 유혹에서 허우적거리게 된 것일까.
미국 유학 시절 마약을 접하기 쉽다는 것은 홍 전 의원의 책 '7막7장'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 홍 전 의원은 "나도 유학하며 마약을 권유받은 적이 있지만 마약을 한 적은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이런 유혹을 딸은 이겨내지 못한 것일까.
지난 5월 홍 전 의원은 30년 터울로 자신과 똑같은 미국 명문고를 졸업한 딸의 졸업식 사진을 올리며 기뻐했다. 하버드대 출신 홍 전 의원과 같이 딸도 올 초 하버드에 진학해 더욱 뜻깊어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차기 총선 물망에 여러 차례 오르며 정치권 투신이 점쳐지고 있던 홍 전 의원의 행보에 딸의 마약 파문은 찬물을 끼얹었다.
홍 전 의원의 딸까지 유력 집안 자제들의 마약 사건 소식은 올해만 벌써 네 번째다.
올초에 SK와 현대가 3세가 잇따라 적발돼 지난 1심에서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경찰의 봐주기 의혹에 스스로 자신을 체포해달라고 경찰츨 찾았던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장남 선호 씨도 구속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유력 집안 자제들의 마약 사건이 계속 일어나다 보니까 왜 이들이 마약에 손을 대는지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유를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유학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과 캘리포니아주에선 치료 목적의 대마는 합법이므로 일부 마약류의 경우 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전문가들은 유학을 간 유력 집안의 자제들끼리 같은 학교 또는 인근 학교에 진학해서 서로 어울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 누군가가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주변 친구가 함께 손을 대는 건 시간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 최근 유통되는 변종 마약이 고가인데, 이를 유력 집안 자제들의 구매력과 연관지어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때부터 유학생활을 경험한 부유층 자제들은 유학으로 인한 스트레스, 성공지향적인 가정 풍토에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마약류에 노출되기 쉬운 외국 환경에 경제적 풍요로움이 더해지면서 마약에 쉽게 넘어가는 요소가 된다. 마약 공급자 입장에서는 중독만 되면 연예인과 재벌은 경제적 이익을 최대로 창출할 수 있는 제1의 타겟이 된다"고 설명했다.
가장 문제는 적발이 돼도 유력 집안 자제 대부분은 대형 로펌을 선임해 대응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형량을 받는다는 점이다. 유력 집안 자제들의 마약 문제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허탈감을 느끼는 큰 이유기도 하다.
앞서 7월 재판에서 법원은 남양유업 3세 황하나에게 "피고인은 수회에 걸쳐 지인과 함께 필로폰을 투약하고, 향정신성 의약품을 복용했지만 반성하고 있고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는 점을 감안했다"고 집행유예 선고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이후라도 다시 마약류 범죄를 저지르면 실형이 선고될 것"이라며 "다시는 이런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고 훈계했다.
하지만 경찰의 봐주기 의혹에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더해지며 자유를 되찾은 이들에게 법적 규제가 마약 범행 재발의 강력한 동기로 작용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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