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걷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입력 2019-10-02 16:56   수정 2019-10-03 00:02

지난주 새로 개통한 제주 올레 7-1코스인 ‘하논’을 걸었다. 모든 걸 잠시 내려놓고 걷기를 통해 느림의 미학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빠름과 효율성, 치열한 경쟁에 매몰돼 있는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올레길 개척자이자 오랜 지인인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을 최근 만났다. 그의 노력으로 올레길은 제주 최고의 관광 상품이 됐다. 우리나라에 ‘OO길’ 열풍도 일으켰다. 서 이사장은 “일본 규슈와 베트남, 몽골 등에 자문해주고 함께 올레를 개척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과 자연, 마을을 이어 주는 올레가 해외에서도 새길을 내고 있다. 올레길에 이어 순례길과 유배길, 숲길, 둘레길, 해안누리길도 만들어졌고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인은 자신의 생활리듬과 패턴을 느리게 해 삶의 질을 높이고 여유로운 자기만족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 ‘슬로(slow) 시티’가 조성되고, 제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원료 고유의 맛을 살린 ‘슬로 공법’을 적용한 건강 제품도 유행이다.

최근엔 아내와 함께 오름을 자주 찾는다. 제주는 400여 개에 달하는 오름이 솟아있는 ‘오름 왕국’이다. 출렁이는 억새 물결, 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광야의 풍경, 솔솔 불어오는 초가을 바람 모든 것이 힐링이다. 한라산을 배경으로 말들이 떼를 지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 풍경인 ‘고수목마(古藪牧馬)’도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오름을 오르다 보면 일상에서 쉽게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네트워킹하는 것도 가능하다. 몇 년간 못 봤던 동창, 회사 직원, 고향 후배 등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반가운 악수와 함께 풀밭에 앉아 목도 축이고 함께 귤도 까먹으면서 세상사를 나눈다.

그동안 내 삶의 모토는 ‘적자생존’이었다. 생물진화론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다. 오래된 습관인 메모는 자꾸 들여다보면 눈에 익어 쉽게 각인된다. 특히 새로운 생각과 사고까지 가능하게 해준다.

이젠 적자생존과 함께 ‘걷자생존’도 실천하고 있다. 사무직인 필자에게 올레길과 오름은 체력을 키우고 세상을 배우는 현장 학습장이다. 느림의 미학을 통해 나를 재발견하고 더 나아가 세상과 타인을 포용하는 시간도 가져본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고 말했듯이 걷는 것은 육체와 영혼을 건강하게 만드는 최고의 운동이자 일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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