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 중 하나인 액체 불화수소(식각액)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달 초부터 국내 업체 제품을 일부 반도체 생산라인에 투입하고 있다. 액체 불화수소는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를 깎고 불순물을 없애는 데 쓰이는 핵심 소재다.
일본 정부는 대(對)한국 수출규제를 시작한 지난 7월 이후 기체 불화수소 수출은 세 건 승인했지만, 액체 제품 수출은 아직 한 건도 허용하지 않았다. 산업계에선 반도체기업의 핵심 소재 국산화와 수입처 다변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2일 “지난 1일부터 일부 생산라인에 일본산 액체 불화수소 대신 국산 제품을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액체 불화수소를 램테크놀러지에서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램테크놀러지는 2001년 10월 설립된 반도체 공정용 화학소재 전문 기업이다. 중국산 원료를 수입해 재가공한 불화수소 제품과 자체 생산분 등을 모아 SK하이닉스에 납품하고 있다. 램테크놀러지의 액체 불화수소 공급 가능 물량은 연 7000t 수준으로 SK하이닉스 전체 수요량의 절반 정도다. SK하이닉스와 램테크놀러지는 지난해 말부터 액체 불화수소 생산을 함께 준비했고, 지난달 최종 품질 시험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도 지난달부터 일부 생산라인에서 국산 액체 불화수소를 사용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생산 라인에서 일본 제품 대신 국내에서 생산한 액체 불화수소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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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업계 "한숨 돌렸다"
일본 정부가 액체 불화수소(식각액) 수출 승인을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에서 ‘국산화’ 소식이 들려오자 국내 반도체업계에선 ‘한숨 돌렸다’는 반응이 나왔다. 일본은 지난 8월부터 순차적으로 포토레지스트(감광액), 기체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수출을 허가했다.
하지만 액체 불화수소 수출은 ‘서류 보완’ 등의 이유를 내세워 승인하지 않고 있다. 국내 업계에선 액체 불화수소가 웨이퍼 식각(깎아내는 것)과 불순물 제거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일본이 ‘의도적으로’ 수출 승인을 미루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정부의 액체 불화수소 수출 허가가 늦어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산 제품 품질 테스트에 더욱 속도를 냈을 것”이라며 “일본의 수출규제가 핵심 소재 국산화의 발판이 됐다”고 평가했다.
디스플레이업계에선 반도체업계보다 빠른 속도로 액체 불화수소 국산화가 이뤄지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달 초 액체 불화수소 일부 국산화 소식을 알렸다. 이달엔 생산라인에 투입되는 액체 불화수소 100%를 국산화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최근 국산 액체 불화수소 테스트를 끝내고 조만간 생산라인에 투입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30일 기체 불화수소 수출 두 건을 허가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시작된 이후 반도체 핵심 소재 3종 관련 수출 승인 건수는 총 일곱 건이다. 이번에 수출 승인된 기체 불화수소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가 각각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수입 물량이 허가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처음으로 일본 정부에서 수출 승인을 받은 게 맞다”며 “아직 제품이 국내에 들어오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황정수/고재연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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