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을 법적으로 활용한 범죄수사 기법을 ‘법최면(forensic hypnosis)’이라고 한다. 기본 원리는 사람의 뇌파를 깨어 있을 때의 ‘베타파’에서 졸리거나 명상에 잠겼을 때의 ‘세타파’로 유도하는 것이다. 법최면은 목격자나 피해자에게 주로 적용한다. 이를 통해 강력사건을 해결한 사례가 많다. 최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찾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경찰은 30여 년 전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의 ‘최면 진술’과 유전자(DNA) 증거물 분석을 토대로 범행 자백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법최면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최면 상태의 진술이 허위인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9년 미국의 ‘에일린 사건’이다. 에일린이라는 여성이 최면 상태에 들었다가 “20년 전에 아버지가 내 친구인 소녀 둘을 죽였다”고 말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종신형을 받고 수감됐다. 7년 후 DNA 검사에서 거짓 진술임이 드러났다.
이런 한계 때문에 최면 상태의 진술은 법적 증거 효력이 없다. 같은 사건을 두고 각자 기억을 달리하는 ‘라쇼몽 현상’처럼 사람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수사 과정에서 새로운 단서를 찾는 방법으로는 여전히 유효하다. ‘자동DNA추출·증폭기’ 등 최신 장비와 ‘강력범죄자 신원확인정보 데이터베이스’와 연계하면 효과가 더 크다.
최면은 범죄수사뿐만 아니라 정신의학적 치료 방법으로도 활용된다. 뇌과학자 데이비드 슈피겔은 “최면을 통해 뇌의 감각과 정서 반응을 조절함으로써 불안·스트레스·육체적 고통 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면(hypnosis)의 어원이 신화 속 ‘잠의 신’ 히프노스인 만큼 수면치료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무의식 속의 잠이 범죄수사를 넘어 심리치유에도 도움이 된다니 무엇이든 활용하기 나름인 듯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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