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로마법이 진짜 추구한 것은 '인간다운 삶'

입력 2019-10-03 17:52   수정 2019-10-04 00:31

고대 로마법은 유부녀가 간통했을 경우 남편이 아내와 간통한 남자를 모두 죽일 수 있도록 허용했다. 남편은 간통한 아내와는 반드시 이혼해야 했다. 이혼하지 않은 남편은 ‘매춘알선죄’란 중죄로 다스려졌다. 남자를 포주로 간주해 처벌한 것이다. 이 때문에 남편이나 시아버지는 아내이자 며느리를 간통죄로 고소해야만 했다. 간통한 여자는 재산의 3분의 1을 몰수당했고 재혼도 금지됐다. 또 로마의 남자 시민들이 입던 헐렁한 겉옷인 ‘토가’를 강제로 입어야 했다. 간통범들은 남녀를 분리해 각기 다른 섬으로 유배를 보냈다. 섬들은 유배된 간통범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간통죄는 주로 상류층 기혼녀들에게 적용됐다. 귀족의 재산이 다른 사람의 핏줄로 넘어가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경제적 동인이 컸다.

한국인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한동일 씨는 신작 <로마법 수업>에서 천년제국 로마의 법률을 현대인의 시선으로 소개한다. 인류법의 기원인 로마법은 인간다운 삶과 공동체를 이룩하기 위한 고대 로마인들의 산물이다. 저자는 법의 테두리를 넘어 전작 <라틴어 수업>과 같이 인간과 세계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펼친다. 로마시대와 현대를 부단히 오가며 변함없는 인간의 속성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소통하고 화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보여준다.

저자가 풀어내는 로마법 이야기에는 오늘날에도 참고할 만한 대목이 많다. 가령 재판관이 사익을 위해 판결을 조작했거나 여성에게 최음제를 먹여 성폭행한 사람들은 ‘강제유배형’에 처했다. 사법농단 판사나 성폭행범은 죄의 경중을 떠나 시민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판단해서다. 또 고위공무원 및 국회의원이 되려면 반드시 군 복무를 마쳐야 했다. 지도자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요구한 것이다.

채무자가 빚을 제때 갚지 않았을 때 채권자는 채무자를 노예시장에 팔아 빚을 회수할 수 있었다. 심지어 채무자의 목숨을 취할 권리도 지녔다. 채무불이행을 이처럼 중죄로 다스린 데는 로마인이 신의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문학동네, 268쪽, 1만5500원)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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