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한글날'에 새겨보는 우리말의 소중함

입력 2019-10-07 09:00  

“제자들 중 한 명이 영국에 유학할 때 장학금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적이 있다. 내막을 알고 보니 한국에서 살던 집 주소가 문제가 됐다고 하더라. 아파트 이름에 ‘캐슬(castle)’이 들어가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이렇게 ‘넉넉한’ 집안의 학생에게까지 장학금을 줄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외솔회 회장을 지낸 최기호 전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한 어문 관련 세미나에서 소개한 사연이다.

잘못 알려진 상식 많아

우리말 실태와 국어정책의 방향에 대한 발언 중 나온 얘기다. 외래어가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요즘은 아예 영문자가 우리 글자(한글)를 대체하는 일도 흔하다. 일상생활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책을 훼손하는 당신, 인격도 Out!’ 한 도서관 1층에 내걸린 현수막 구호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데까지 이미 파고들어와 있다.

오는 9일은 573돌 맞는 한글날이다. 요즘은 우리말과 한글에 대한 인식과 자부심이 커졌지만 한편으론 잘못 알려진 상식도 꽤 있는 것 같다. 흔히들 ‘한글이 곧 우리말’인 줄로 알고 있는 게 그중 하나다. 우리말은 ‘우리나라 사람의 말’이다. ‘입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글은 그 말을 적기 위한 ‘우리 고유의 글자’를 말한다. 문자로 나타낸 말을 입말에 상대해 ‘글말’이라고 한다. 훈민정음 서문의 “나랏 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에 답이 있다. 우리말이 중국말과 다른데, 당시 글자는 한자뿐이 없어 우리말을 옮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새로 만든 글자가 훈민정음(지금의 한글)인 것이다. 간혹 순우리말에 이끌려 ‘순한글’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런 말은 없으니 쓰지 말아야 한다.

유네스코 기록 유산은 한글 아닌 ‘훈민정음 해례본’

우리말은 순우리말, 외래어(한자어 포함), 귀화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순우리말은 하늘, 땅, 얼굴 등 원래부터 있던 말이다. 고유어 또는 토박이말이라고도 한다. 한자어는 중국의 한자에서 온 말이다. 우리말의 50~7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래어는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버스 컴퓨터 피아노 등 국어에서 널리 쓰이는 단어를 말한다. 따로 대체할 말이 없어 우리말 속에 뿌리를 내린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스쿨이나 밀크 같은 외국어와 구별된다. 흔히 ‘외래어 남용’이라 할 때의 외래어는 정확히는 외국어를 뜻하는 것이다. 귀화어란 외래어 중에서도 오랜 세월 우리말 속에 녹아들어 외래어란 느낌조차 없는 말이다. 빵(←po·포르투갈), 붓(←筆·중국), 담배(←tabaco포르투갈), 김치(←沈菜·중국), 구두(←kutsu[靴]·일본) 같은 게 그런 사례다.

“한글은 유네스코 등록 세계기록유산”이란 것도 비교적 널리 퍼진 오해 중 하나다. 한글, 즉 우리 글자가 등록된 게 아니라 <훈민정음 해례본>이란 책이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훈민정음’이라 할 때는 두 가지를 말한다. 세종대왕이 1443년에 고유 글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1446년에 반포했다. 이와 함께 그 해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간행했다. 해례본은 훈민정음을 만든 목적과 사용법, 창제 원리 등을 설명한 일종의 해설서다. 이 해례본이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돼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997년 유네스코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것은 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훈민정음이 곧 한글이다 보니 사람들이 한글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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