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등 돼지 살처분 결정, 농가 상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 결정 "

입력 2019-10-04 17:48   수정 2019-10-04 17:56


“밤낮으로 돌본 내 자식같은 돼지들 내놓아야 하는데, 무조건 살처분 통보라니요.”

정부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집중적으로 발생한 경기 파주와 김포시의 모든 돼지 없애는 특단의 조치를 내놓은 가운데 대상이 된 한 농가 대표가 이 같이 말했다. 정부는 돼지를 수매하거나 살처분하는데 약 207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파주와 김포 등 일부 양돈 농장 주인들이 정부의 수매와 살처분 조치에 반발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예상된다. 양돈업계는 “아직 전파 원인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살처분을 감행한 농장주들은 앞으로 언제 양돈사업을 재개할 수 있을 지 불투명하다”며 “구제역이 감기였다면 ASF는 중증의 암과도 같은데, 같은 프로세스로 해결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4일 “오늘(4일)부터 8일까지 파주시와 김포시 관내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농장 반경 3㎞ 밖 돼지에 대해 수매와 예방적 살처분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발생지역 반경 3㎞ 내 기존 살처분 대상은 수매에서 제외하고, 3㎞ 밖에서 수매되지 않은 돼지는 전부 살처분한다. 농식품부는 파주와 김포에서 3㎞ 예방적 살처분 대상 돼지를 제외하면 관내 돼지 수가 6만 마리가량 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 가운데 5∼6개월가량 사육해 식용으로 사용하는 생체중 90㎏ 이상 비육돈 비율이 27∼28%로 1만7000 마리가 수매 대상이 될 전망이다.

농식품부는 파주와 김포 돼지 수매 비용이 95억원 가량, 살처분에는 112억원가량이 각각 들어 수매·살처분 비용이 총 207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전 5일간 도매시장 평균 가격을 수매단가로 정했다.

정부 수매 방침에 농가가 응하지 않을 경우 정부는 이 지역 돼지에 대해 예방적 살처분을 하고 대신 농장주에게 보상금을 주도록 돼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정확한 발병 원인이 나오면 맞춰서 대책을 세우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예방적, 선제적 모든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수매 후 도축한 돼지고기를 비축했다가 시장 상황을 봐 가면서 시중에 유통할 계획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과거 구제역 발생 때도 이런 식으로 수매한 적이 있다”면서 “비축한 돼지고기는 앞으로 수급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시중에 풀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이후 총 13건의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면서 살처분되는 돼지 수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에 따른 살처분 대상은 14만2831마리에 달한다. 정부가 파주와 김포 나머지 지역의 돼지 6만 마리를 모두 수매해 도축하거나 살처분하기로 하면서 이번 사태로 목숨을 잃는 돼지 수는 20만마리를 넘어설 전망이다. 국내 돼지 사육 두수의 약 1.6%다.

한돈협회와 양돈 농가들은 “살처분한 농가는 언제 다시 돼지를 키울 수 있을 지 전망조차 하기 어렵고, 다시 키우더라도 늘 불안에 떨어야 한다”면서 “스페인의 경우에도 박멸까지 30년 이상 걸렸고, 쉽게 사라지는 바이러스가 아닌 만큼 정부의 살처분과 수매 결정 등은 현실적인 관점에서 재논의하고 재입식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추가 발생이 없을 경우 마지막 발생 살처분 매몰 후 30일이 지나면 이동 제한이 해제되고 그때부터 40일간 소독 세척하는 등 양돈을 재개하기 위한 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농장에서 방역 조치가 제대로 안 되면 기간이 연장된다”면서 “현재로서는 재입식을 위한 기간이 얼마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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