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 관련업을 하는 지인이 최근 한 말이다. 한국의 제조업이 흔들린다는 우려와 지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 뿌리인 기계산업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생한 전언은 놀랍기만 했다.
'제조업 전략' 운은 뗐지만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작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을 언급하며 대책 마련을 강력 주문한 기억 때문이다. 당시 대통령은 산업통상자원부의 2019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산업 발전 전략은 제조업 혁신이 핵심 기둥이 돼야 한다. (중략) 정부는 비장한 각오로 제조업 부흥을 위한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중략) 단기 대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면서….”
대통령의 인식은 핵심을 찔렀다. ‘단기 대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부분에선 비장함마저 읽혔다. 하지만 현장에선 1년이 다 되도록 반향이 일지 않고, 정부의 인식 변화도 여전히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지인의 설명은 이랬다. 자동차 동력전달 부품만 해도 서보모터라 불리는 디지털 기기로 교체되면서 기존 기계식 장치를 생산하던 영세 납품업체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 디지털화로 인해 발주량 자체가 20~30% 줄었고 주 52시간 근로,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으로 인건비는 급증하고 있다. 기계산업에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서보모터와 센서다. 하지만 자동차의 파워트레인, 섀시 같은 프레임은 정밀가공 등 전통 기계산업이 받쳐줘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그 붕괴 조짐을 제대로 파악해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조업 르네상스’는 2012년 버락 오바마 정부 때 시작된 미국의 제조업 부흥 산업정책이다. 이 정책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개리 피사노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왜 제조업 르네상스인가(Producing Prosperity)>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고부가가치 산업이 아니라고) 가전공장을 아시아로 보낼 때 그것이 나중에 전기차 배터리로까지 이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제조업을 잃는 것은 과학과 기술, 심지어 국가경쟁력을 잃는다는 뜻일 수 있다”고. 기술 노하우와 전문기술 노동력, 경쟁사, 공급사, 연구개발(R&D)과 벤처, 대학 등이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고 가치사슬을 이뤄야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핵심 기술역량을 남기고 제조업체를 외국으로 넘겨버리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장 모르고 메시지도 약해
국내 뿌리산업 현장에선 이런 공감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데도 말이다. ‘희망이 없다’거나 ‘자력갱생, 각자도생 분위기’라는 말이 넘쳐난다. 무엇 때문일까. 정책당국이 현장과 산업의 미시적 부분을 너무 몰라서인가, 아니면 실제로는 큰 관심을 쏟지 못해서인가.
업계는 정부 정책을 ‘메시지’로 이해한다. 뿌리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정부가 대체기술을 육성하든 금융·세제 지원을 하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그런 얘기가 안 들린다고 한다. 이는 폐업을 하든 구조조정을 하든 알아서 하라는 얘기와 같다. 정부 정책에서 기존 제조기반이 붕괴되든 말든 상관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본다는 중기인들의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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