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NBA가 가로막은 미·중 스몰딜 가능성

입력 2019-10-09 08:08   수정 2019-10-09 11:38

미·중 무역협상은 시작하기도 전에 결렬로 결론이 나는 모양새입니다.
10일 회담 개시 날짜가 다가올수록 양국 갈등은 심화되고 있습니다. 8일(현지시간) 희망을 잃은 뉴욕 증시가 급락하자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양적완화(QE)' 카드까지 깜짝 발표했지만, 하락세를 막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중국의 NBA 보이콧 문제까지 불거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스몰딜 양보 가능성도 희박해졌습니다.

미 상무부는 전날 하이크비전 등 28개 중국 기업과 정부 기관을 블랙리스트에 올렸습니다. 신장자치구의 위구르족 등 소수 민족 인권을 탄압하는 데 관여했다는 겁니다.
중국 상무부는 내정간섭이라며 필요한 조치(보복)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류허 부총리가 시진핑 주석 특사 타이틀 없이 방미한다고 보도했습니다. 결정권이 없다는 것이지요. 또 협상단이 방미 하루만인 11일 귀국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이에 뉴욕 증시는 다우가 300포인트 내리는 등 장초반 급락세를 보였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 백악관이 공공연기금의 중국 투자 차단 방안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해 시장을 더 냉각시켰습니다.

제롬 파월 의장의 전미실물경제협회(NABE) 연례회의 연설을 앞두고 오후 1시께 시장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파월 의장은 곧 대차대조표 확대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혀 시장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이번 조치가 경기 부양을 위한 양적완화(QE)가 아니라 단기자금시장의 불안에 잡기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시장은 이를 QE로 해석했지만요.

하지만 좋은 분위기는 얼마가지 않았습니다.

오후 2시50분께 미 국무부가 위구르족 등 인권침해와 관련해 중국 정부 관료들에 대한 비자 발급 제한 조치를 발표한 겁니다. 시장은 다시 급락했고 결국 다우지수는 1.19%, S&P500은 1.56%, 나스닥은 1.67% 떨어진 채 마감됐습니다.

이제 미중 협상의 마지막 희망은 '스몰딜'입니다.
중요한 결정권도 없이 오는 류 부총리와의 협상은 큰 의미가 없을 겁니다. 게다가 중국은 그동안 중국제조2025 등 산업정책, 정부보조금, 지식재산권 문제 등 구조적 이슈에 대해 논의하지 않겠다는 자세입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를 하려면 중국의 농산물 구매와 미국의 화웨이 제재 철회 등을 바꾸는 작은 딜을 해야할 겁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낮습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계속 빅딜을 원한다고 밝혀왔습니다.
게다가 며칠새 발생한 NBA 사태로 스몰딜 가능성은 희박해졌습니다.

야오밍의 팀으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어온 NBA 휴스턴 로켓츠의 대릴 모리 단장이 지난 4일 트위터를 통해 ‘홍콩 시위를 지지한다’는 내용을 올렸다가 중국내 반발을 산 겁니다.
리닝, 텐센트, 상하이푸동개발은행 등 중국 기업들이 줄줄이 NBA와 휴스턴 구단에 대한 후원을 취소한 데 이어 8일 중국 CCTV는 오는 10일 상하이에서 열리는 LA 레이커스와 브루클린 네츠의 프리시즌 경기 중계를 취소하고, 올해 NBA 중계도 잠정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알리바바는 쇼핑몰에서 휴스턴 로켓츠 제품을 없애버렸습니다. 거의 '사드 보복' 급입니다.

NBA는 이에 "중국에 있는 많은 팬과 친구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유감스러운 행동"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사과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미국 내에서 거센 반발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돈을 위해 인권과 민주주의를 저버렸다는 겁니다.
민주당 대권 주자 중 한 명인 베토 오루크는 "정말 당황스럽다. NBA가 사과해야할 것은 그들이 인권보다 이익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의 조시 헐리 상원의원은 "NBA가 중국의 독재정권 편에 섰다"며 비판하는 편지를 애덤 실버 커미셔너에게 보냈습니다.
뉴욕타임스, LA타임스 등 미 언론들도 매우 비판적인 자세입니다. 심지어 월스트리트저널은 8일자에 "중국이 NBA를 괴롭히면 미 정부도 중국 운동선수들의 입국을 막자"는 스포츠 담당 기자의 칼럼을 실었습니다.


중국에 대한 반감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지식재산권, 보조금 등 구조적 이슈를 뺀 채 중국과 합의할 수 있을까요? 이는 '사드 보복'이 진행되고 있는데 대통령이 중국에 양보하는 꼴이 될 겁니다.
월가의 한 트레이더는 "중국과 스몰딜로 합의하는 건 미국내 큰 반발을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딜이 깨지면 미국은 오는 15일 2500억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25%에서 30%로 올리게됩니다. 그렇다고 파국을 맞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딜이 실패하면 시장에 약간의 실망은 나타나겠지만, 어차피 합의 가능성은 그동안 주가에 많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큰 폭 하락은 없을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양국은 지금처럼 협상을 질질 끌면서 내년까지 갈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습니다.

월가에서는 다음달 16~17일 칠레에서 열리는 APEC 정상 회담을 주시합니다.
이 곳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다시 한 번 만납니다. 지금보다는 그 때가 합의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게 월가 관측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상 실무협상보다는 정상회담에서 뭔가 끝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또 11월19일은 화웨이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임시 거래 허가가 종료되는 날입니다. 협상의 지렛대로 쓸 수 있겠지요.
미국은 그 전에 중국 기업들의 뉴욕 증시 상장 폐지와 공공연기금의 중국 투자 금지 방안을 완성해 또 다른 지렛대로 쓰려할 수도 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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