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 도서 프로그램 붐 타고 침체된 출판계에 모처럼 훈풍

입력 2019-10-10 17:03   수정 2019-10-11 00:41

책 관련 방송 콘텐츠들이 출판·서점가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하거나 숨은 동네서점을 발굴하는 등 도서 관련 방송 프로그램들이 최근 속속 등장해 관련 책들의 판매량이 증가하자 불황을 겪는 출판·서점계는 반색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24일 첫 방송된 tvN 프로그램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에 소개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류성룡의 <징비록>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5년 출간된 <사피엔스>는 1회 방송에 소개된 후 교보문고 9월 4주 종합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전주보다 41계단 상승한 7위로 뛰어올랐다. 영풍문고에서도 10월 1주 종합 베스트에서 9위에, 예스24 10월 2주 베스트셀러에서 8위에 올랐다. 역사 강사 설민석이 방송에 출연해 이 책을 알기 쉽게 풀어준 게 순위 역주행의 주된 이유였다. 지난 1일 방영된 <징비록>도 각 서점 역사분야 베스트셀러 2~3위에 올랐다.

MBC 예능프로그램 ‘같이 펀딩’에서 소개된 시집들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판매량 증가로 이어졌다. 배우 유인나가 강하늘에게 추천한 이해인 수녀의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이 교보문고 시 부문 3위에, 강하늘이 오디오북 녹음을 위해 선정한 박준 시인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4위에 올랐다.

2001~2003년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느낌표’의 대표 코너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이후 자취를 감췄던 책 관련 프로그램들이 최근 예능 교양 붐을 타고 속속 등장했다. 유튜브 등 영상 콘텐츠가 대세가 된 시대에서 책을 단순히 소개하기보다는 책 내용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지식’과 ‘감성’을 앞세운 방식으로 진화한 게 특징이다.


EBS ‘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이 대표적이다. 한국 대표 작가들이 전국 곳곳에 자리 잡은 다양한 동네 책방을 찾아가 소개하고 그 안에서 책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지난달 26일 첫방송에선 소설가 김훈이 작가 백영옥과 강원 속초에 있는 책방 동아서점을 둘러봤다.

지난 5일 시작한 MBC라디오 ‘책을 듣다: 책 읽어주는 스타들’은 책보다 ‘낭독’에 집중했다. DJ 배철수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배우 이엘이 박완서 작가의 <그 남자네 집>, 가수 옹성우가 목소리로 박준 시인의 산문집을 30분 동안 읽어주는 식이다. 김현우, 박경, 이특, 선우정아 등 음악가들이 책과 어울리는 음악(OST)을 만드는 내용의 JTBC ‘멜로디 책방’도 지난 9일 방송을 시작했다.

출판업계는 형식과 내용을 잘 갖춘 책 방송 콘텐츠들의 잇단 등장을 반기고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파워 유튜버들이 소개하는 책은 대부분 반짝인기에 그치는 데 비해 방송 프로그램들이 만드는 미디어 셀러는 오래 지속된다”고 말했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담당은 “유튜브로 영향력이 넘어갔다고 해도 여전히 대중적으로 영향력이 훨씬 큰 건 TV 콘텐츠”라며 “독자들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게 미디어 셀러를 만드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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