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원은 한트케에 대해 “인간 체험의 뻗어나간 갈래와 개별성을 독창적 언어로 탐구한 영향력 있는 작품을 썼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토카르추크에 대해서는 “경계를 가로지르는 삶의 형태를 구현하는 상상력을 담은 작품을 백과사전 같은 열정으로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파문에 연루되면서 노벨문학상 선정이 취소돼 이번에 지난해와 올해 수상자 두 명을 한꺼번에 발표했다.
토카르추크는 장편소설 <방랑자들>로 지난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다. 최근 페미니즘 조류와 지난해 선정 취소 사유까지 감안해 ‘수상자 중 최소 1명은 여성 작가일 것’이라는 문학계 관측이 적중했다. 여성 수상자가 나온 것은 2015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벨라루스) 이후 4년 만이다. 한트케는 연극 ‘관객모독’과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원작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극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2005년 영국 작가인 해럴드 핀터 이후 14년 만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총상금 900만크로나(약 10억9000만원)와 함께 노벨상 메달·증서를 받는다. 시상식은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 2019년 수상자, 페터 한트케 <오스트리아>
"인간 체험의 갈래와 개별성
독창적 언어로 탐구한 작품 써"
'베를린 천사의 시' 대본 집필
'독일어권 문학의 이단아'
“노벨문학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페터 한트케다.”
200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73)가 한 말이다. 파격적인 문학관과 독창성으로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숱한 화제를 뿌려온 ‘독일어권 문학의 이단아’ 페터 한트케가 마침내 올해 노벨문학상을 거머쥐었다. 한트케는 1942년 오스트리아 케른텐주 그리펜에서 태어났다. 산촌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탓에 문화적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 두 살도 못 돼 독일 베를린으로 이사하는 등 성년이 되기까지 국경을 넘어 여러 곳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이런 불안정한 생활의 연속으로 날카롭고 부정적인 시선을 갖게 됐다.
오스트리아 그라츠대에 진학해 법학을 전공했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문학이었다. 첫 소설 <말벌들>(1966)을 출간하면서 법대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됐다. 데뷔 직후 독일 작가들의 토론 집단인 ‘47그룹’ 회합에 참석하기도 했다. 미국 프린스턴대에 초청받은 자리에서 기존 작가들에게 퍼부은 비난은 한트케만의 문학적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문학이란 언어로 만들어진 것이지, 그 언어로 서술된 사물들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1966년 발표한 <관객모독>은 이런 철학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으로 전통 연극의 문법을 모조리 깨뜨린다. 단 네 명의 배우가 등장해 온갖 말들을 쏟아낸다. 처음엔 점잖게 시작하지만 점차 비속어, 욕설 등으로 확대된다. 이를 통해 현실과 유기적인 상호관계를 맺고 통렬한 성찰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는 1970년대 들어 전통적인 서사를 작품에 접목했다. 그렇게 쓴 첫 작품이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이다. 한트케는 이 작품에서 극단적 범죄를 통해 사회와 타인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불안과 공포를 조명한다.
<소망 없는 불행>은 한트케 어머니가 자살한 이후 쓴 작품이다. 전쟁과 가난으로 몸과 마음이 병들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머니를 보며 한 인간이 자아에 눈뜨는 과정을 그린다. 한트케의 문학 세계를 잘 드러낸 가장 전형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한트케는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활동을 해왔다.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대본을 써서 주목받기도 했다. 덕분에 많은 상도 받았다. 게오르크 뷔히너상, 실러 상, 잘츠부르크 문학상, 프란츠 카프카상 등도 수상했다. 한트케는 <변신> 등을 쓴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세계와도 비슷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대학 시절 카프카 작품에 심취했던 그는 “카프카는 나의 글쓰기에 한 문장마다 척도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관객모독> <소망 없는 불행> 등을 번역했고 <페터 한트케 연구>를 펴낸 윤용호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문학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써야 한다는 ‘신사실주의’가 팽배한 상황에서 한트케는 문학을 언어로 풀어내며 주목받았다”며 “언어로 유희하듯 동사와 목적어 등의 순서를 바꾼 <관객모독>은 지금 우리가 봐도 충격적으로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벨 문학상 후보자로 늘 언급됐지만 정치적 이유 등으로 받지 못했다”며 “하지만 꾸준히 한트케가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이제서야 제대로 평가받게 됐다”고 덧붙였다.
■ 2018년 수상자, 올가 토카르추크 <폴란드>
"경계 가로지르는 삶의 형태
백과사전 같은 열정으로 표현"
대표작 '태고의 시간들'
섬세한 시각으로 인간고독 포착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다른 존재와 교감하려는 시도, ‘공감의 가능성’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201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여성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올해 초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글쓰기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그는 문학계에서 예견해온 유력 수상자 후보군에 들어 있었다. 2007년 출간한 장편소설 <방랑자들>로 지난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덕분이다. 토카르추크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예측하는 영국 베팅사이트 ‘나이서 오즈’에 지난 주말 깜짝 등장했고 발표 직전까지 4위에 이름을 올렸다.
토카르추크는 폴란드에서 가장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여성 작가로 꼽힌다. 바르샤바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문화인류학과 철학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3년 장편소설 <책의 인물들의 여정>으로 등단한 토카르추크는 칼 융의 사상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져 신화와 전설, 외전(外典), 비망록 등 다양한 장르를 차용해왔다. 이후 <태고의 시간들>(1996), <낮의 집, 밤의 집>(1998), <세상의 무덤 속 안나 인>(2006), <죽은 자의 뼈에 쟁기를 끌어라>(2009), <야고보서>(2014) 등의 장편소설을 썼다. 이들 작품에 인간의 실존적 고독, 소통의 부재, 이율배반적인 욕망 등을 특유의 예리하면서도 섬세한 시각으로 담아내 데뷔 초부터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고른 관심과 호응을 받았다.
그를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은 오는 21일 국내에 출간되는 장편소설 <방랑자들>(민음사)이다.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여행길에서 마주친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그린다.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언어’의 힘을 빌려 꼼꼼히 기록함으로써 그들에게 불멸의 가치를 부여해 호평을 받았다.
토카르추크가 쓴 장편소설 중 국내에 처음 번역·출간된 <태고의 시간들>(은행나무)은 그를 폴란드 국민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이다. 어디에도 없지만 어느 곳에도 있을 수 있는, 현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중첩된 공간이자 시공을 초월한 ‘열린 공간’인 태고를 배경으로 20세기 폴란드 영토에서 실제 일어난 야만적인 사건들을 촘촘하게 보여줬다. 이 소설은 1996년 출간돼 폴란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니케 문학상 중 ‘독자들이 뽑은 최고 작품’으로 선정됐다.
그는 <태고의 시간들>을 통해 역사의 비극 뒤편에서 잊힐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삶을 복원하고 그 의미에 대해 질문했다. 토카르추크는 “기독교 복음서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으로 기록된 역사 속에서 여성의 자리는 남성과 비교할 때 늘 턱없이 부족했다”며 “역사라는 것이 일상의 내밀하고 사적인 측면으로도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을 여성의 시선에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폴란드 문학의 국내 권위자인 최성은 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 교수는 “토카르추크 작품의 본질은 타인과의 공감과 연민”이라며 “심리치료를 할 때처럼 타인과 교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작품에 담아낸다”고 평가했다. 이어 “<태고의 시간들>처럼 소소한 개인들의 이야기 조각을 모아 하나의 역사적인 담론을 보여준 것에 한림원이 높이 평가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윤정현/김희경/은정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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