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한글날'에 새겨보는 우리말의 소중함 (2)

입력 2019-10-14 09:00  

한글날을 이틀 앞둔 지난 7일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선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처리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해례본은 무엇이고 상주본은 또 뭘까? 우리는 한글의 소중함을 말하지만 막상 한글이 어찌 만들어졌고 어떻게 후대에 전해졌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지난호에 이어 한글과 관련한 상식을 더 살펴보자.

‘해례본’은 한자로, ‘언해본’은 한글로 풀어

훈민정음을 얘기할 때 흔히 ‘언해본’ ‘해례본’ ‘안동본’ 같은 말을 한다. 우선 훈민정음이라 할 때 이 말은 두 가지를 가리킨다. 하나는 세종대왕이 1443년 창제하고 1446년 반포한 우리말 표기체계(지금은 ‘한글’이라 부르는 자모 체계)를 뜻한다. 다른 하나는 이를 널리 알리고자 1446년 9월 발간한 책을 말한다. 책 이름이 <訓民正音>이다. 이 책은 무려 500여 년을 잠자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돼 간송 전형필이 입수해 보관(간송미술관)해 오고 있다. 이를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하고 ‘훈민정음 안동본’이라고도 부른다. 국보 제70호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이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옴으로써 비로소 한글 창제 원리가 밝혀졌다. 말미에 1446년 9월 상순에 발간했다고 적혀 있어 이것을 토대로 지금의 한글날(양력으로 환산해 10월 9일)이 탄생하기도 했다. 해례본 원본을 최초로 해설한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에 따르면, 해례본은 크게 ‘정음(正音)’과 ‘정음해례(正音解例)’로 나뉜다. 흔히 ‘예의’와 ‘해례’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해례본은 세상에 단 하나만 전해져 왔었다. 그런데 2008년 경북 상주에 동일 판본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주본’이 국민적 관심을 끌어왔다. 상주본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 국가가 법적 소유권자로 최종 판결이 났으나 실소유자 보상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그 실체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해례본은 한문으로 돼 있다. 그중 세종이 직접 쓴 정음(기존의 ‘어제서문+예의’) 부분만 따로 한글로 풀이한 게 ‘훈민정음 언해본’이다. 서강대 고려대 서울대 등 여러 곳에서 소장하고 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유를 밝힌 “나랏 말씀이 듕귁에 달라…”로 시작하는 문장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해례본은 ‘國之語音 異乎中國…’).

‘나라말’ 뜻하는 ‘국어’는 세종 때도 써

‘국어’라는 말이 일본에서 만든 단어라는 오해도 있다. 우리말 말살 정책으로 신음하던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어가 곧 ‘국어’였다. ‘조선어학회 사건’의 발단은 그 역설적 시대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1942년 여름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한 청년이 조선총독부의 지령인 단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청년의 집에서 일제 경찰은 “오늘 국어를 사용하다가 학교에서 벌을 받았다”란 글귀를 담은 일기장을 발견했다. 일경이 보기에 ‘국어인 일본어를 썼다’고 해서 벌을 받았다니 담임교사는 일종의 ‘괘씸죄’에 해당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실제론 일본어가 아니라 조선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벌을 받은 것이었다. 한국인에겐 조선어가 국어이므로 당연히 그리 쓴 것이었다. 이를 빌미로 해 일제는 한글을 연구하는 학술단체인 조선어학회를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때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장지영 선생 등 당대의 우국지사들이 대거 투옥됐다. 이윤재, 한징 선생은 옥사하기까지 했다.

‘국어’라는 말은 이미 세종대왕 때도 쓰였다. ‘且國語雖不分輕重(또 우리나라 말에서는 비록 가볍고 무거운 것을 구별하지 않더라도) … 於國語無用(나라말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오는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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