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는 왜 핵심협약을 제시했나
ILO는 노동문제를 다루는 유엔의 전문기구로 1919년 설립됐다. 임금,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과 함께 고용, 사회보장 등에서 협약을 채택·제시하고 있다. 현재 총 189개 협약을 채택했다. ILO가 채택한 협약을 비준하는 것은 회원국의 자유다. 다만 비준한 협약은 그 회원국 내에서 법률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ILO 협약 수가 늘어나고 비준 협약을 실제로 이행하는지에 대한 ILO의 감시가 엄격해지면서 1990년대 이후 협약 비준율이 점차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960~1965년 회원국의 협약 비준율은 평균 21%였으나, 2005년 이후에는 7% 수준으로 떨어졌다.
ILO는 이에 중요 협약 비준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다. ILO는 1998년 “모든 회원국은 비준 여부와 관계없이 기본적 권리에 관한 원칙인 핵심협약을 존중하고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노동기본권 선언을 했다. 또 결사의 자유 보장, 강제근로 금지, 아동근로 금지, 차별 금지 등 4개 분야의 8개 핵심협약을 채택했다. 8개 핵심협약에 대해서는 모든 회원국이 비준 여부와 관계없이 협약을 준수할 사실상의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는 게 국제법·노동법 학자 다수의 견해다.
187국 중 144국이 핵심협약 비준
ILO 전체 회원국 187개국 중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한 국가는 144개국이다. 유럽연합(EU)의 모든 회원국(28개국)은 핵심협약을 비준했다. 이는 ILO가 주로 유럽 국가의 법체계를 기준으로 국제 노동기준을 입안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개발도상국 중심으로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한 국가들이 많은 편이다. 이는 핵심협약을 비준한 국가에 관세를 인하해 주는 EU의 대외무역정책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반면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큰 미국, 중국, 인도 등은 각 나라의 노사관계 상황을 비롯한 경제·사회·문화 환경을 고려해 핵심협약 일부만 비준했다. 미국은 자국의 법률에 부합하는 협약만을 비준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또 ‘결사의 자유’ 협약은 연방정부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유로 비준하지 않았다. 한국과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은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했다. 그러나 노사 관계를 합리적·협력적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문제가 크게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은 국내법과 충돌 많아
한국이 그동안 결사의 자유, 강제근로 금지 관련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못한 것은 핵심협약과 국내법의 충돌 문제가 발생하고, 협약 비준 시 국가 전반에 미치는 중대한 영향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특히 ‘결사의 자유’ 협약(제87호, 제98호)은 노조 가입범위,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등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더구나 주요 선진국처럼 협력적 노사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면 경제적·사회적으로 부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게 기업들의 우려다.
한국 노사관계는 산업별 노조 중심의 유럽과 달리 ‘기업별 노조 중심 체제’라는 특수성이 있다. 또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립적·갈등적 노사관계 때문에 국가경쟁력이 떨어지는 현상도 반복되고 있다. 한국의 대립적 노사관계와 경직된 노동시장은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매년 최하위 수준으로 언급될 정도로 전체 국가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ILO 핵심협약 비준은 한국의 노사관계를 협력적·타협적으로 전환하고, 노사관계를 선진화하는 ‘노동개혁’ 차원에서 종합적·일괄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NIE 포인트
ILO 핵심협약이 생긴 이유를 생각해보자. 미국과 중국 등이 ILO 핵심협약을 일부 비준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토론해보자. 한국의 법 제도가 ILO 핵심협약에 맞지 않은 경우 어떤 해결책이 합리적일지 논의해보자.
강현우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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