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프트웨어(SW) 기업 SAP를 9년간 이끌었던 빌 맥더멋 최고경영자(CEO·58)가 사임했다. 후임은 SAP의 클라우드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제니퍼 모건 부회장과 크리스천 클레인 최고운영책임자(COO)가 공동 CEO를 맡는다.
맥더멋 CEO는 올해 말까지 고문으로 남을 예정이다. 그는 2010년 CEO 자리에 올랐다. 클라우드 분야에 집중하면서 회사를 크게 성장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맥더멋 CEO는 한쪽 눈을 볼 수 없다. 2015년 7월 계단에서 넘어지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왼쪽 눈을 잃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눈은 인공 안구다.
사고가 났을 당시 회사 수뇌부는 CEO 교체까지 고려했다. 맥더멋 CEO가 비행기를 타지 못해 독일 SAP 본사로 돌아올 수조차 없었던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더멋은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CEO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과 관련이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결국 자리를 지켰다.
맥더멋의 강인함과 집요함은 사내에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이른바 ‘흙수저’다. 맥더멋은 1961년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새벽부터 밤늦도록 지하에서 케이블을 까는 노동자였고, 그가 살던 집은 너무 낡아서 비가 오면 바닥이 흥건히 젖을 정도였다.
어릴 때부터 돈을 벌어야만 했던 맥더멋은 열일곱 살에 식료품 가게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맥더멋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한 식료품 가게의 전 주인이 비용 대부분을 빌려줬고, 이익이 나면 나눠 갖는 조건이었다. 그는 돈을 벌어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학비를 마련했다. 맥더멋은 “나의 원동력은 가난과 허기였고 뭐 하나 공짜로 손에 쥔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 다울링대를 거쳐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이후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에서 최고경영자 과정도 이수했다. 맥더멋의 첫 직장은 복사기로 유명한 제록스였다. 제록스에서 17년 동안 일하면서 최연소 부문장을 맡으며 맹활약했다.
그는 제록스를 나와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서 일하기도 했다. SAP로 옮긴 것은 2002년이다. 맥더멋은 2015년 사고 이후 CEO직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한 일간지에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고 이전보다 훨씬 열정적이고 강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도 큰 부자가 될 수 있다. 나는 기회를 낚아채기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또 중요하지 않은 수많은 일로부터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그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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