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탄 사람과 그를 따르는 개, 활을 들고 사슴과 멧돼지를 사냥하는 사람들, 기마행렬 뒤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5세기 신라 귀족 무덤으로 추정되는 경주 쪽샘 44호 적석목곽묘(돌무지덧널무덤) 발굴조사에서 ‘신라 행렬도’가 그려진 토기를 발견했다고 16일 발표했다.
연구소는 경주 황오동 쪽샘 44호분 호석(護石·무덤 둘레에 쌓는 돌) 북쪽에서 신라 행렬도가 그려진 긴목항아리 조각들을 수습했다. 행렬이란 주제를 바탕으로 기마, 수렵, 사냥 모습을 복합적으로 묘사한 신라 토기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물과 동물, 복식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회화성이 우수한 자료로 평가된다. 당대 신라 사회상과 사후 관념, 신라와 고구려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유물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긴목항아리의 전체 높이는 약 40㎝로 추정된다. 제작 시기는 5세기 중후반으로 짐작되고, 무덤 제사에 사용했다가 일부러 깨뜨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그림은 상하 4단으로 구성된다. 가장 위쪽인 1단과 그 아래인 2단, 가장 아래쪽인 4단에는 기하학 문양을 반복해서 새겼다.
관심을 끄는 그림들은 3단에 있다. 기마행렬·무용·수렵·주인공으로 구성돼 있다. 기마행렬에는 사람이 탄 말 한 마리와 사람이 없는 말 두 마리가 있다. 행렬을 따라가는 인물들이 무용하는 장면, 활 든 인물들이 동물들을 사냥하는 장면과 말 탄 주인공이 개(추정)와 함께 행렬하는 장면 등이 묘사돼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개는 무덤을 지키는 수묘(守墓)의 동물인데 이번 토기에도 주인공 앞뒤에 개를 닮은 동물이 있다”며 “무용과 수렵 등 그림 구성이 고구려 고분벽화와 비슷해 신라와 고구려 관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자인 전호태 울산대 교수도 “5세기에 신라는 정치적으로 고구려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주인공 옆에 있는 개는 고구려 요소”라고 말했다. 강현숙 동국대 교수는 토기에 대해 “신라인들의 장송(葬送) 관념이 반영된 유물로 형태는 전형적인 신라 유물이지만, 기존 신라 토기에서 그림이 나온 사례가 없다”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호석 북쪽에서 행렬도가 그려진 토기와 함께 대호 9점 등 제사 유물 110여 점을 출토했다. 대호는 호석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묻었고, 대호 내외부에서는 고배(高杯·굽다리접시), 개배(蓋杯·뚜껑접시), 토제 악기, 토제 방울 같은 작은 토기가 나왔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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