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융합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생존 전략

입력 2019-10-16 17:23   수정 2019-10-17 00:12

10월,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풍성하면서도 우수를 자아내는 계절인 가을에는 여러 음악이 어울릴 수 있으나 필자는 재즈를 추천한다. 재즈의 어쿠스틱한 음색과 자유로움이 가을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재즈는 20세기 초반 미국 루이지애나주 남부 항구도시 뉴올리언스에서 흑인들이 탄생시킨 음악이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스페인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고 이 두 나라 사람들과 영국인, 미국의 백인과 흑인, 크리올(유럽인과 흑인의 혼혈) 등 여러 인종이 살던 곳으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이런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흑인 고유의 민요와 유럽식 악기의 융합으로 탄생한 것이 재즈다. 융합의 산물이라서 그런지 재즈에는 흑인들의 슬픔과 즉흥성, 유럽 음악의 발랄함과 정제함이 묘한 조화를 이뤄 감성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융합은 여러 가지 개념이나 기술을 합쳐 하나의 개념이나 기술을 만드는 것이다. 여러 사례를 실생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햄버거와 쌀밥을 융합한 라이스버거, 온돌문화와 침대문화를 융합한 돌침대 등이 떠오른다.

최근 정부는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으로 꼽히는 기술들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정보기술(IT) 강국을 자처하는 한국은 이런 기술들을 먼저 만들지도 못했고, 선진국에 비해 기술 격차도 꽤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떤 기술로 다른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도모해야 할까. 기존 기술을 더 깊이 파고들어 새로운 기술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기존 기술을 융합하면서 새로운 기술들을 만드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나 생각한다.

예를 들어 최근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환자의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자의 질환을 자동 분석하거나, 주식 거래 데이터 분석을 통해 투자 종목을 선정해주기도 한다. 문제는 인공지능 기술이라고 해서 이런 진단과 투자 등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무조건적으로 따르거나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일 해커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변경해 질환을 오진하게 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종목을 추천하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신뢰의 문제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변경될 수 없도록 원천 차단한다든지, 블록체인의 ‘합의 기술’을 이용해 가장 합리적인 합의 결과를 도출하도록 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도 인공지능 기술과 융합한다면 청소년은 술집에서 못 쓰는 화폐, 불법적인 복지 예산의 사용을 금지하는 화폐, 집의 냉장고가 직접 매시간 좀 더 저렴한 전기를 구매해 사용하는 스마트한 화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두 기술을 융합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신뢰할 수 있고 스마트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의 융합은 새로운 경쟁력과 기회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런 융합 사례와 아이디어들이 시장에서 많이 만들어지도록 하려면 정책을 수립하는 정부의 유연한 구조와 대학의 융합 교육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분야별 칸막이식으로 구성돼 있는 정부 조직 구조나 대학 교육은 융합적 사고나 정책을 어렵게 한다. 필자가 학회 차원에서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융합 학술대회를 개최하려 하는데도 학자들의 각기 다른 시각과 운영 방식을 조율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느낄 정도이니 산업현장은 오죽하겠는가.

융합은 산업, 교육 또는 정책의 문제만은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과 국가가 경쟁력을 갖게 하기 위한 소중한 생존 전략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 무엇이 있겠느냐는 말처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두 분야가 각각의 관점과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해 융합한다면 성장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융합 전략이야말로 이 시대의 기업, 대학,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다뤄야 하는 이슈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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