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은 흔들리고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16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센터에서 만난 정모씨(57)는 “구직 여건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던 정씨는 식당 사정이 악화되면서 지난달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그는 “손님이 줄자 주인 부부가 종업원을 모두 내보냈다”며 “다른 곳도 장사가 안된다며 받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이날 한국경제신문 기자들은 서울, 관악, 서부, 강남 등 서울시내 네 군데 고용센터를 돌았다. 이들 고용센터에서는 매일 실업급여 수급 예정자를 대상으로 실업급여 교육을 한다. 두 시간 남짓의 교육에서는 실업급여 액수와 신청 방법부터 부정수급 처벌 사례까지 알려준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꼭 참석해야 하는 과정이다. 현장에서 신청자 45명의 사정을 들었다. “지난달 취업자가 전년 동기 대비 35만 명 늘었다”는 고용통계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식당 등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고용사정이 크게 나빠졌다는 것이다. 신규 실업급여 신청자의 대부분은 식당에서 일하던 이들이다. 청담동 이자카야에서 요리사로 일했다는 김모씨(50)는 술에 취해 불쾌한 표정으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33세부터 일했던 이자카야는 반일(反日) 분위기가 한창이던 올해 7월 매출이 급감하자 김씨를 권고사직시켰다. 그는 “17년간 일한 곳에서 잘리니 일할 의욕도 없다”며 “수당으로 버티다가 다른 진로를 알아볼 예정”이라고 했다.
고려대 앞 멕시코 음식점에서 일했던 김모씨(52)는 점포가 지난주에 아예 문을 닫았다고 했다. “지난 3년간 근근이 버티더니 결국 폐업했다”며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지만 마땅한 데가 없다”고 했다. 요리사로 일했던 20대 청년도, 10년간 일하던 두부 식당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50대 중국 동포도, 꽤 규모가 있는 식당에서 정규직으로 일했던 30대 여성도 비슷한 사연을 전했다.
고용센터 직원들은 최저임금 급등이 실업급여 지급 대상자 증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관악고용센터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실직된 사람이 늘어나며 장·노년층 구직자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강남고용센터 관계자는 “경비와 식당, 청소 등을 하던 취약계층이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전했다. 실업급여 신청자들이 지난해부터 크게 늘며 신청 자체도 어려워졌다. 교육업계에서 일하던 정모씨(26)는 “신청 단계 하나하나에 2~3년 전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들었다”고 했다.
실업급여 지급보다 재교육 등 재취업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바라는 신청자도 많았다. 운수업계 출신인 강모씨(39)는 “경기가 나빠지면서 원래 하던 택배차량 운전은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졌다”며 “재취업을 위한 실질적인 교육이 실업수당보다 절실하다”고 했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권고사직 당한 이모씨(27)는 “고용센터의 교육과 일자리 소개가 나이 드신 분들을 대상으로 한 느낌”이라며 “젊은 층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경목/성상훈/최다은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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