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야당의 반대로 관련법 개정이 어려워지자 시행령을 슬쩍 바꾸는 ‘편법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지지층에 경제민주화, 공정경제 등의 성과를 내보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의 시행령 개정안은 상위법은 물론 헌법 위반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지적이다.
연기금의 ‘주식 5% 대량 보유 보고(일명 5% 룰)’ 규제를 완화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만 해도 그렇다. 국민연금이 기업에 지배구조 개선을 이유로 정관 변경을 요구해도 경영 참여로 보지 않도록 한 것은 정관 변경을 경영권 영향 사항이라고 못 박고 있는 상위법과 충돌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금융위원회와 국회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건의서를 낸 이유다. 경영권 박탈이나 다름없는 대주주 취업 제한을 담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속한 회사가 아니라 다른 회사로 취직하는 것을 막기 위한 상위법 취지에 어긋난다.
국회에서의 공론화 과정과 야당의 반대를 피해가려는 행정부의 이런 행태는 입법영역 침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은 국가기관이 민간기업을 통제할 수 없도록 한 헌법 126조에, 대주주의 취업을 제한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 개정안과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한 상법 시행령 개정안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15조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불안감에 휩싸인 재계는 헌법소원까지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경영권을 침해하는 정부가 또 한편으로는 기업이 주체로 뛰어야 하는 혁신성장을 부르짖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기업 지배구조를 흔들고 경영권을 위협하는데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한 투자에 나설 기업은 없다. 게다가 정부가 밀어붙이는 시행령대로면 대주주가 투자를 결정했다가 실패하기라도 하면 횡령·배임 등의 죄목으로 경영권을 박탈당할 게 뻔하다.
대기업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 벤처기업이 증자, 인수합병 등을 통해 성장 가도를 달리지 못하는 것도 경영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벤처기업협회가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가 누리는 것처럼 차등의결권을 도입해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 대기업도 벤처도 맘껏 뛸 수 있게 해야 혁신성장이 가능하다. 그러려면 기업 경영권을 흔드는 일부터 멈춰야 한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