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이 모두에 부담을 주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을 찾은 한국 관광객은 지난달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58.1% 감소한 20만1200명에 그쳤다. 공공 조달시장에도 불매 운동 여파가 미치고 있다. 조달청에 따르면 7월부터 지난달까지 정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의 일본산 구매액이 31억7000만원으로 1년 전보다 79.3% 감소했다. 일본 제품 구매를 꺼리는 기관들이 늘어난 결과라고 한다.
조달시장에서의 불매 운동은 불필요하게 일본 정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해야 한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일본산 제품 조달 규모가 작아 타격을 주기는 어려운 반면 ‘감정적 대응’으로 비쳐 부작용만 커질 수 있어서다.
한·일 양국은 그간 관계 악화의 책임을 상대국에 떠넘기며 ‘네 탓’ 공방만을 벌여왔다. 입장 차이가 좁혀지기는커녕 일본의 수출 규제, 한국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선언에 이르기까지 악화일로를 달려왔다. 일왕 즉위식은 그런 양국 관계를 정상 상태로 되돌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의 국가적 경사에 한국 정부 내 대표적인 ‘지일(知日)인사’로 통하는 이 총리가 방문하는 것은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다.
아베 총리도 지난 16일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대화는 계속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 역시 출구를 찾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총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베 총리는 물론 일본 내 주요 인사들과의 다양한 접촉을 통해 일본 내 분위기와 속내를 잘 읽어 지혜로운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타래가 얽힌 외교 현안일수록 최고위급 간 ‘통 큰 결단’이 종종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됐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 개선은 ‘글로벌 밸류 체인’의 정상화라는 면에서도 시급하다. 글로벌 분업 시대를 맞아 각국은 상호 비교우위를 활용하는 파트너로서 긴밀하게 얽혀 있다. 특히 일본-한국-중국으로 이어지는 밸류 체인은 세계 경제 흐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것이 이런 흐름 자체를 뒤바꿀 수는 없다.
외교안보에서도 마찬가지다. 핵무장한 북한의 도발과 위협, 예측불허인 중국의 마구잡이식 패권주의에 맞서기 위해서도 한·미·일 공조는 반드시 복원돼야 하며, 한·일 관계 정상화는 그 핵심 고리 가운데 하나다. 강제징용 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강제매각 절차가 빠르면 11월 시작된다. 지소미아도 11월 하순이면 종료된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일본과의 자존심 싸움에 몰두하다 자칫 동북아의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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