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면 흔히 바흐를 말하고,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라고 하면 보통 아이작 뉴턴을 떠올린다. 그리고 ‘경영학의 아버지’로는 미국의 경영학자이자 작가인 피터 드러커가 언급된다. 한평생 연구와 집필 활동을 쉬지 않았던 드러커는 경영 서적만 해도 30권 넘게 저술하는 등 다작을 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드러커에게 자신의 숱한 저서 중 어느 것을 최고로 여기는지 물어봤다. 그 질문에 노년의 석학은 웃으며 “바로 다음에 나올 책”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피터 드러커의 장수 만세
드러커는 그와 같이 대답하며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인 주세페 베르디를 떠올렸을 것이다. 드러커는 그의 오페라를 무척 사랑했는데, 단순히 음악만 즐긴 게 아니라 베르디를 인간적으로도 존경했다고 한다. 베르디가 적지 않은 나이에도 지치지 않고 음악 작업에 매진하는 자세를 흠모했던 것이다. 베르디는 그의 대표작 ‘아이다’를 57세에, ‘오텔로’를 73세에 작곡했고 타계하기 3년 전까지도 새 오페라를 발표했다.
“나의 대표작은 다음에 나올 책”이라는 드러커의 대답도 실은 베르디가 남긴 한 발언에서 빌려온 것이다. 베르디는 말년에 “음악가로서 난 완벽을 추구했다. 완벽하게 일하고자 애썼지만 하나의 작품이 끝날 때마다 항상 아쉬움이 남았다. 이 때문에 나에겐 언제나 한 번 더 도전해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그는 8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그를 존경했던 드러커도 97세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미 꽤 오래전의 일이다. 환갑은 전근대 시대에나 장수의 기준이었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 환갑은 그저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는 의미일 뿐이다.
비스마르크의 정년 개념
‘65세 정년’이란 개념은 본디 19세기 말 독일의 철혈 재상 오토 비스마르크의 사회보장정책에서 비롯됐다. 1889년 비스마르크는 65세에 이르면 노령 연금을 받는 정책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이는 당시 유럽에서 점차 확산되기 시작하던 사회주의 운동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스마르크는 의료보험, 산재보험, 연금보험 등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사회보장제도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래서 한때 65세를 ‘비스마르크 연령’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옛날에도 65세 무렵에 은퇴했는데 지금에 와서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비스마르크가 활동할 당시엔 평균 수명이 60세가 훨씬 못 돼 65세 은퇴란 사실상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에 비스마르크가 정한 은퇴 연령이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게 되레 신기할 노릇이다.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취감, 보람, 자아실현의 긍정적 효과는 아무런 생산적 활동을 하지 않는 연금 생활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얘기다. 60대에 은퇴해 무력하게 노년을 보내는 것보다는 일을 통해 오랜 세월 쌓은 연륜과 지혜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개인 및 사회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노인들이 일자리를 가지면 규칙적인 운동과 늘어난 활동량으로 건강이 증진되고 자연스레 병원 출입도 줄게 된다. 정부가 직업이 있는 노인 122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일자리를 갖게 된 뒤 6%가 빈곤에서 빠져나오고 건강도 좋아져 의료비도 1인당 19만원가량 덜 소요됐다고 한다. ‘건강하니까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니까 건강하다’는 말은 인생의 숨은 진리다.
한국의 은퇴 연령이 선진국보다 많이 낮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은 아예 정년이라는 개념이 없다. 미국은 1986년, 영국은 2011년에 법정 정년 퇴직제를 폐지했다. 일본은 2006년 정년 연장, 정년 폐지, 정년 후 계속 고용 중 하나를 기업이 선택하도록 법을 바꿨다. 이를 통해 정년 도달 전에 일정 연령에서 임금 수준을 낮추고 정기 승진을 갖지 않는 등 고용체계를 개선해나가고 있다.
우리 시대의 은퇴
프랑스의 여류 저널리스트 콜레트 메나주가 70대에 쓴 <노년 예찬>은 오늘날 유럽의 노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이 처한 사회 경제적 상황은 어떤지에 대해 상세히 써내려간 책이다. 그는 “일흔이 넘어도 활기차고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으며, 진짜 노년은 아흔에 시작된다”고 썼다.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괴테가 82세에 이르러서야 <파우스트>의 마지막 문장을 완성했다는 건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다. 드러커와 괴테 그리고 메나주에게 인간은 숨이 멎을 때 죽는 게 아니라 은퇴할 때 죽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시대의 노년은 은퇴를 하기에는 너무 젊다.
기억해주세요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취감, 보람, 자아실현의 긍정적 효과는 아무런 생산적 활동을 하지 않는 연금 생활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얘기다. 60대에 은퇴해 무력하게 노년을 보내는 것보다는 일을 통해 오랜 세월 쌓은 연륜과 지혜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개인 및 사회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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