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없애겠다" 아닌 "키우겠다"는 교육정책이 시급하다

입력 2019-10-20 17:42   수정 2019-10-21 00:16

국회 교육위원회의 수도권 교육청 국정감사에서 서울·경기·인천교육감이 한목소리로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 일괄 폐지에 동의의 뜻을 밝힌 가운데, “과학고와 영재고도 없애자”는 발언까지 나왔다. 이대로 가면 모든 고등학교가 일반고로 바뀌어야 할 판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대입 특혜 의혹이 자사고와 외고, 과학고·영재고 때문에 불거진 양 몰아가는 이런 주장에 국민이 동의할지 의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조 전 장관 딸 사태를 계기로 2025년에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 등을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발단이 된 입시 의혹이 제도의 문제인지, 불법의 문제인지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단계적 전환’에서 ‘일괄 전환’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그런 정부·여당이 내친 김에 과학고와 영재고까지 폐지하겠다는 심산인 듯하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도 없이 밀어붙이는 이런 정책은 교육 현장의 혼란만 야기할 뿐이다.

소위 ‘진보 교육감’들이 특수한 목적으로 설립된 고교들을 없애자며 제시하는 근거도 황당하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일부 학교에 특권을 주고, 우수 학생들만 따로 모아 교육하는 것”이라며 “영재고와 과학고까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다양한 교육 수요와 학생 선택권 측면을 완전히 무시하는 발언이다. 정부·여당은 ‘교육 평준화’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산이겠지만, 평준화 만능의 도그마에 빠지면 융복합시대 창의 교육은 뒷전이 되고 만다는 게 대다수 교육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정치인들이 고교 체제를 흔들기 시작하면 ‘교육 백년대계’는 불가능하다. 정권이 바뀔 때는 말할 것 없고, 임기 중에도 사건이 터졌다 하면 교육제도가 포퓰리즘에 춤을 출 게 뻔하다. 자사고와 외고, 과학고·영재고를 설립할 당시에는 ‘다양하고 우수한 인재 양성’이라는 합당한 목적이 있었다. 설립 목적에 어긋난 부분이 있다면 없앨 게 아니라 바로잡아 키우는 게 예측가능한 교육정책의 방향에도 맞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돌파할 다양성과 창의·융합은 교육정책의 최대 과제다. 마침 한경과 교육부가 내달 6~7일 ‘함께 만드는 미래’를 주제로 ‘글로벌 인재포럼 2019’를 연다. 올해 14회째인 이 포럼은 유네스코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콘텐츠 파트너와 후원기관으로 참여할 만큼 인재개발 및 교육에 관한 세계 최고의 국제포럼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이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최빈국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선진국 반열에 당당하게 올라선 원동력이 인재교육에 있음을 세계 각국이 주목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 한국의 교육이 갈수록 대중에 영합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오염돼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올해 인재포럼에서는 다양성과 포용성의 인재정책, 모든 사람의 가능성을 높이는 교육, 개인화·다양화로 가는 인적자원 혁신, 디지털 전환 시대 직업역량 개발 등 교육정책의 핵심 과제들이 논의된다. 이를 계기로 한국이 창의적 인재 육성국가로 재출발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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