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금리 인하' 안 먹히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입력 2019-10-22 17:38   수정 2019-10-23 00:16

‘악성 재고’가 기업 경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 등 50대 주요 상장사의 지난 6월 말 연결재무제표 기준 재고자산 규모는 145조168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재고가 어느 정도 소진될 때까지 기업들이 투자와 생산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경기침체가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연 1.25%로 0.25%포인트 인하했지만, 재고가 쌓이면 금리 인하에 따른 투자 확대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금리를 내려도 돈이 투자처로 흘러들지 않고 은행 주변에서만 맴돌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은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합친 ‘부동자금’이 사상 최대,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한은이 공급한 돈이 경제현장을 돌면서 창출하는 통화량의 배수)가 역대 최저란 점에서도 확인된다. 늘어난 재고로 인해 한국 경제가 ‘유동성 함정’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제로(0) 금리’까지 낮추기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며 “경기침체에 직면했을 때 대응할 정책수단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가 더 나빠지면 제로 금리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하지만 재고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제로 금리’로 가도 부동자금을 늘려 부동산 투기 수요를 부추기는 등 부작용만 키울 것이란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금리 인하가 안 먹히면서 정부는 ‘확장 재정’에 더욱 매달리지만, 그럴수록 자발적인 민간투자를 밀어내는 구축효과가 확연해지고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전통적인 정책수단들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구조 개혁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기업의 부담을 덜어줄 노동시장 개혁은 물론이고 민간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규제 개혁과 감세도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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