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연평대첩'의 해군

입력 2019-10-22 17:36   수정 2019-10-23 00:23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군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우리 군을 기습 공격한 것은 모두 다섯 차례다. 남북한 해군 간 첫 교전은 ‘연평대첩(延坪大捷)’으로 불리는 1999년 6월 제1차 연평해전이다. 해군의 즉각적인 응징으로 북한군 50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고, 북한 함정 6척이 파손됐다.

2002년 6월 제2차 연평해전과 2009년 11월 대청해전,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사건 등도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발생했다. 치밀한 계획 아래 자행됐다는 게 공통점이다. 윤영하 소령 등 우리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한 제2 연평해전만 봐도 북의 계획적 도발임이 드러난다.

1차 연평해전에서 반파됐던 북한 함정 등산곶 684호가 ‘연평대첩’에 참전했던 ‘참수리 325호’만을 표적 삼아 선제공격했다. 일촉즉발의 현장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해군의 교전수칙도 피해를 키웠다. 경고방송, 시위기동, 차단기동, 경고사격, 격파사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교전수칙 허점을 북한군이 노렸다.

우리 군은 선제공격을 당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지만 북한군의 피해는 더 컸다. 북한 해군 13명이 죽고 25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2차 연평해전도 사실상 ‘승리한 해전’으로 불리는 이유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해병대의 즉각적인 반격으로 북한군 피해가 적지 않았다. 북한군은 급속한 무기 노후화 탓에 재래식 충돌에서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북한의 선전매체 우리끼리TV가 최근 ‘연평도를 벌써 잊었는가’란 제목의 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승도 해병대사령관이 국정감사에서 “유사시 함박도를 초토화하는 화력계획을 세웠다”고 밝힌 것을 두고 “2010년 우리 군대의 불소나기 맛을 본 자가 정신을 못 차리고 줴쳐대고(지껄이고) 있다”며 대놓고 협박한 것이다.

북의 협박과 망발을 방치하고 두둔하는 정부와 군 수뇌부 탓에 우리 군의 대북 경계심이 느슨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군의 정보수집 능력과 초기 대응력을 크게 약화시킨 ‘9·19 남북 군사합의’를 ‘평화에 이르는 큰 진전’이라고 강변하고, 천안함 폭침과 연평해전을 ‘서해상에서 일어난 불미스런 충돌’(정경두 국방부 장관)이라고 하는 마당이다. 북의 도발은 항상 우리의 느슨함과 허점을 파고들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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