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여건이 개선됐거나 사업이 잘돼서 그렇다면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가끔 전화를 걸어오는 충청도의 A기업인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그는 한 번 통화하면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의 문제점 등에 대해 한 시간 이상 열변을 토하는 기업인이었다. 오죽 답답하면 토요일에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답변은 간단했다. 더 이상 이런저런 얘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하소연해도 대답 없는 메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사업을 ‘축소지향형’으로 전환 중이라고 덧붙였다.
프로크루스테스처럼 몸집 줄여
그는 공장 증설을 포기했고 외국으로 공장을 옮기려고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다. 내수업종이어서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지만 더 이상 한국에서 사업하는 것은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이미 생산직 잔업을 없앴다. 수주도 줄였다. 채산성이 낮은 주문은 받지 않고 있다. 기업은 매출을 늘리기 위해 수주에 총력을 기울이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침대에 몸을 맞추는 프로크루스테스처럼 제도에 맞춰 몸집을 줄이고 있었다. 잔업수당이 줄어든 근로자들의 반발이 극심했다. ‘일 좀 더하게 해달라’는 게 이들의 간청이었다. 하지만 정책이 그런데 어떡하냐며 종업원들을 설득했다.
문제는 이런 기업인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 이상 정부의 정책 수정이나 국회의 법개정을 기대하는 데 지쳐 해외 공장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는 B사장도 있다. 이 회사는 계절성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 1년 중 6개월은 바쁘고, 6개월은 느슨한 편이다. 설령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지금의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나도 주 52시간제를 지키기 어렵다.
해외 공장 가동이 본궤도에 오르면 국내 공장 종업원 중 약 90%를 내보낼 작정이다. 현지 내수시장이나 싼 노동력을 겨냥해 능동적으로 해외로 진출하는 게 아니다. 쫓기듯 나가는 상황에서 칠순을 눈앞에 둔 이 기업인이 느끼는 심정은 이역만리 타향으로 귀양 가는 심정일 듯하다.
침묵 길어지기전 대책 나와야
기업인들이 말문을 닫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일 수 있다. 침묵이 길어지기 전에 대책이 나와야 한다. 주 52시간제, 환경 관련 법, 각종 거미줄 규제 등을 종합 점검할 필요가 있다.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 부진과 글로벌 경기침체로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기업가 정신마저 위축되면 경제 회복의 희망이 사라질 수 있다. 피부에 와닿는 대책이 필요하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한 기업인이 통화 말미에 남긴 얘기가 오랫동안 귓가에 맴돈다. 그는 “1년 내내 잔업하는 것도 아니고 일감이 밀리는 계절에만 추가 근로를 하는데 앞으로는 열심히 일하면 감옥에 가게 생겼다”고 말했다. “김 기자, 이 말을 꼭 기억하시오. 지금도 경기가 나쁘다고 하지만 기업의 해외 탈출로 근로자들의 연쇄 실직이 본격화되면 그나마 지금이 얼마나 좋은 시절이었는지 많은 사람이 그리워하게 될 거요.”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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