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 잡아야 생존"…71년 만에 '도너츠' 지우고 '커피·음료 왕국' 변신 이끌다

입력 2019-10-24 16:25   수정 2019-10-24 16:26


1948년 ‘커피 앤드 도넛(Coffee and Donuts)’이란 문구를 내세우며 문을 연 ‘던킨도너츠’가 올초 사명을 ‘던킨(Dunkin’)’으로 바꿨다. 창업 71년 만에 ‘도너츠’를 버린 것이다. 매년 30억 개 이상 팔리는 ‘도너츠’를 굳이 전면에서 내리는 결정을 한 사람은 데이비드 호프만 던킨 최고경영자(CEO)다.

호프만 CEO는 사명만 바꾼 게 아니라 도넛, 머핀, 쿠키 등 빵 메뉴를 줄였다. 대신 콜드브루, 니트로 등 커피 메뉴를 늘렸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던킨이 도넛 가게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스타벅스를 좇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장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던킨 모기업인 던킨브랜즈 주가는 올해 20% 넘게 뛰었다. 매출과 점포 수도 증가하고 있다. 호프만 CEO는 브랜드의 정체성이던 ‘도너츠’를 떼어낸 던킨을 재도약시킬 수 있을까.

2000년대 이후 흔들린 ‘도너츠 왕국’

던킨도너츠는 1948년 미 매사추세츠주 퀸시에서 윌리엄 로젠버그가 문을 연 도넛 가게 ‘오픈 캐틀’에서 시작됐다. 던킨도너츠로 이름을 바꾼 건 1950년이다. 당시 여배우 매 머레이가 실수로 도넛을 커피에 떨어뜨렸는데(dunk in), 커피에 젖은 도넛을 그대로 먹었더니 더 맛있었다는 일화에서 따온 이름이다.

1955년부터는 미국에서 프랜차이즈화를 시작했다. 1960년대 미 전역에 100개가 넘는 매장을 열면서 식품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1979년엔 점포 수 1000개를 기록했다. 1990년대 들어 ‘도넛 붐’이 일면서 매장이 3000개까지 늘어났고, 도넛 업체 두 곳을 인수하는 등 외형이 커졌다. 이 무렵 글로벌 연매출은 20억달러를 돌파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던킨도너츠는 2000년대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커피와 도넛을 표방했지만 커피는 스타벅스에 밀렸고, ‘맥머핀’이라는 아침 메뉴를 선보인 맥도날드 등 프랜차이즈와의 경쟁도 치열해지며 도넛까지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크리스피크림 등 경쟁업체는 던킨을 따라잡고 있었다.

밀레니얼 세대 집중 공략

던킨도너츠의 진정한 위기는 도넛 자체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던킨도너츠는 2000년대 중반 ‘던킨이 미국을 있게 한다’는 슬로건까지 내걸며 전통 블루칼라 계층을 공략했지만, 시장 트렌드를 바꾼 건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이후 출생자)였다.

도넛을 대체할 음식이 충분히 많은 상황에서 밀레니얼 세대는 설탕 범벅에 기름에 튀긴 살찌는 음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던킨도너츠는 2010년 이후까지도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도넛으로 샌드위치까지 만들어 파는 등 헛발질을 했다. 토니 와이즈만 던킨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올해 4월 “소비자들은 탄수화물과 설탕을 거부하고 있다”며 “건강하게 먹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패착을 인정했다.

던킨의 변화는 호프만 CEO를 영입하면서 시작됐다. 호프만 CEO는 20여 년을 맥도날드에서 일했다. 던킨 그룹에는 2016년 10월 합류해 미국 내 브랜드 운영과 마케팅을 총괄했다. 2018년 7월엔 던킨도너츠와 아이스크림 전문점 배스킨라빈스를 이끄는 모기업 던킨브랜즈 CEO에 취임했다.

대대적인 변신이 절실했던 던킨에 호프만 CEO는 사명 변경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70여 년 동안 써온 이름에서 ‘도너츠’를 뺐다. 사실 던킨은 이미 총매출의 60%를 도넛이 아닌 커피 등 음료에서 거둬들이고 있었다.

바꾼 건 이름만이 아니었다. 도넛을 비롯해 샌드위치, 쿠키 등 디저트 메뉴를 10%가량 축소했다. 음료는 오리지널 블랜드 커피, 다크 로스트 커피, 디카프, 녹차와 아이스티 탭 등 종류별로 늘리며 커피전문점이란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호프만 CEO는 “던킨을 최고의 음료 중심 브랜드로 발전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고 그것이 성장을 위한 청사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밀레니얼 세대는 콜드브루 등 아이스커피를 선호한다”며 “찬 음료를 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스타벅스를 따라 한 몇 가지 시도도 있다. 매장 분위기는 아늑한 조명과 소파를 더해 카페처럼 바꾸고 에스프레소 전용 머신을 뒀다. 또 스타벅스의 사이렌오더처럼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한 주문방식을 도입했다. 차에 탄 채 주문할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도 설치했다.

매출 증가세로 돌아서…성장 이어갈까

던킨의 변신은 호응을 얻고 있다. 올 2분기 글로벌 매출은 3억59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다. 특히 던킨으로 가장 먼저 변경한 미국에선 매출이 1억6600만달러로 5.8% 늘었다. 2010년 이후 줄곧 마이너스 성장을 하다가 제대로 턴어라운드한 것이다. 커피 매출이 40%가량 증가하면서 성장세를 이끌었다는 평가다.

올 들어 던킨브랜즈 주가는 20% 이상 뛰었다. 배스킨라빈스가 매출 감소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성장세는 던킨이 주도한 것이다. 호프만 CEO는 밀레니얼 세대의 채식 선호도 증가에 맞춰 식물성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식물성 단백질로 대체육을 생산하는 비욘드미트와 협력해 식물육 패티를 넣은 샌드위치를 내놨다.

다만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포브스는 “던킨이 에스프레소 머신을 가져다 놓고 아무리 카페처럼 꾸며도 스타벅스와는 근본적으로 제공하는 경험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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