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가족'의 조건

입력 2019-10-24 17:38   수정 2019-10-25 00:17

2006년 5월 개봉한 김태용 감독의 영화 ‘가족의 탄생’에는 평범하지 않은 가족이 등장한다. 5년간 소식을 끊었던 형철이 스무 살 연상 동거녀인 무신과 함께 누나 미라 앞에 불쑥 나타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신의 전남편이 찾아와 딸을 맡긴다. 미라와 남동생, 미라보다 열여섯 살 많은 남동생 동거녀, 동거녀의 딸은 어색한 공동생활을 시작한다.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에선 가족 구성원이 더 파격적이다. 할머니의 연금과 좀도둑질로 살아가는 이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큰딸, 어린 아들, 새로 들어온 어린 딸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고 법적으로도 아무 관계가 없다.

두 영화는 이혼과 가정폭력 등으로 해체되고 있는 혈연 중심 가족이 또 다른 형태로 재창조되는 과정을 통해 ‘무엇이 진짜 가족인가’란 물음을 던진다. 그러고는 구성원들이 살을 맞대고 끼니를 함께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내보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서로 아껴주고, 함께 둘러앉아 식사하면서 행복을 느끼면 그것이 ‘가족’이라는 메시지다.

대법원이 최근 다른 사람의 정자로 인공수정하거나 혼외관계 등을 통해 낳은 자녀와 부친의 유전자가 다른 것을 알게 됐더라도 뒤늦게 친자(親子)관계를 부인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결혼 중 출생 자녀 친생(親生)추정’이란 36년 전 판례를 유지한 것이다. 유전자 검사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과거 잣대로 판결했다는 일부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혈연관계 없이 형성된 가족관계도 민법이 보호해야 하고, 이런 지속된 관계의 신뢰도 보호해야 한다”는 판결 취지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9월 발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7%가 “혼인과 혈연 여부에 상관없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입양 가족, 미혼모 가족, 비혼동거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사회적 포용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행동이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선진국 수준의 국가 중에서 유일한 ‘아동 수출국’이다. 2017년 기준으로 4100명의 어린이가 버려졌지만 국내 입양은 465명에 그쳤다. 지금도 매년 300~400명 정도가 해외 가정으로 보내지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가족관계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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