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집권한 아르헨티나 좌파…달러 매입 한도 50분의 1로 축소

입력 2019-10-28 17:17   수정 2019-11-27 00:31

아르헨티나 현대사에서 수차례 경제위기를 불러온 좌파 포퓰리즘(대중 인기 영합주의) 정책인 ‘페론주의’가 부활했다. 27일(현지시간)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페론주의자를 자처하는 중도좌파 성향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는 우파 성향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 대통령을 7%포인트 이상 차로 꺾으며 당선됐다.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4년 만에 다시 좌파가 집권하게 됐다.


아르헨티나 선거관리국에 따르면 중도좌파연합 ‘모두의전선’의 페르난데스 후보는 대선 개표가 97% 진행된 상황에서 48.1%를 득표했다. 중도우파연합 ‘변화를위해함께’ 후보로 연임에 도전한 마크리 대통령은 40.4%를 얻었다. 아르헨티나 대선에서는 1위 득표율이 45% 이상이면 결선투표 없이 곧바로 당선이 확정된다. 현지 언론들은 개표율 90%가 넘어선 뒤 페르난데스 후보를 ‘당선인’으로 표기했다.

이날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연말까지 은행 계좌를 통한 개인의 달러 매입을 한 달에 200달러로 제한하고, 달러화 인출도 100달러로 묶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9월 초 발표한 달러 매입 한도 1만달러보다 50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중앙은행은 “외화보유액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페르난데스 당선으로 페론주의가 다시 아르헨티나 정치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페론주의는 1940~1950년대 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아르헨티나식 포퓰리즘을 뜻한다. 노동자 임금 인상, 주요 산업 국유화, 사회 복지 확대, 외국 자본 배제 등을 주장한다.

페르난데스 당선인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나선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2007~2015년)은 4년 만에 다시 대통령궁에 들어서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2003~2007년)의 부인이기도 한 크리스티나는 이로써 ‘대통령 부인→대통령→부통령’이라는 독특한 경력을 갖게 됐다.

아르헨티나는 최근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놓일 정도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빈곤율은 35%에 이르고, 중앙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80%를 넘었다. 친시장 정책으로 아르헨티나 경제를 개혁하겠다고 선언했던 마크리 대통령도 경제를 살리는 데 실패했다. 그가 집권한 지난 4년간 아르헨티나 물가는 연평균 30%가량 상승하고, 두 자릿수 실업률도 해소되지 않았다.

페르난데스 당선인은 노동자 임금 인상, 연금 등 복지 확대, 공교육 강화 등을 내세우고 있어 정부 재정 지출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국제통화기금(IMF)과의 구제금융 재협상에도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IMF는 지난해 경제위기에 몰린 아르헨티나에 560억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이 가운데 440억달러를 이미 지급했다. 나머지 자금 지원에 대한 협상은 오는 12월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로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IMF는 최근 아르헨티나 채권 투자자들에게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 주변국과의 관계도 틀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4개국으로 구성된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앞서 아르헨티나에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 메르코수르를 탈퇴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메르코수르와 유럽연합(EU)이 지난 6월 타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의 미래도 불투명해질 전망이다. 페르난데스 당선인은 “메르코수르-EU 간 FTA 체결 합의가 지나치게 서둘러 발표됐다”며 “아르헨티나 산업에 미칠 영향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합의가 수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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