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청년들의 반란

입력 2019-10-28 18:17   수정 2019-10-29 00:32

‘앵그리 영맨(angry young men·성난 젊은이들)’의 귀환인가. 곳곳에서 분노한 청년들이 들끓고 있다. 21주째인 홍콩 시위를 비롯해 남미, 중동, 유럽 등에서 청년들의 반란이 확산일로다. 나라마다 복잡한 사정이 있지만 1956년 극작가 존 오즈번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Look back in anger)’를 연상케 한다.

이런 사태를 예견한 듯, 영국 옥스퍼드사전이 2017년 ‘올해의 단어’로 꼽은 게 ‘유스퀘이크(youthquake)’였다. ‘youth(청년)+quake(진동하다)’의 합성어인 이 말은 본래 1965년 보그지(誌)가 젊은 세대의 패션·대중문화에서의 갑작스런 변화를 지칭한 조어(造語)였다. 여기에 청년에 의한 정치·사회적 변화란 의미까지 더해진 게 의미심장하다.

전후 구미사회에서 젊은층이 무기력한 기존 질서를 거부한 ‘앵그리 영맨’ 현상이 21세기에 되살아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영국 BBC는 네 가지 요인으로 정리했다. 첫째 불평등이다.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이 빌미가 된 칠레 시위는 그 배경에 지니계수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5개국 중 최고(0.45)일 만큼 심각한 소득격차가 깔려 있다. 연료보조금 중단으로 촉발된 에콰도르 시위, 세금 인상과 대선 조작시비가 맞물린 볼리비아 사태도 대동소이하다.

둘째 정부 부패다. 이집트 이라크 레바논에선 반(反)부패가 화두다. 무능·부패정부가 은근슬쩍 세금을 올리거나, 기본적인 공공서비스조차 부실한 게 원인이다. 셋째 정치적 자유다. 홍콩의 1020세대는 ‘(자유와 권리가 통제된) 중국인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바르셀로나에선 분리 독립을 요구한다. 넷째는 기후변화 대응 촉구다.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 같은 어린 학생들의 시위가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등지에서 벌어진다.

젊은층은 이전 세대와 달리 고학력이고, 날 때부터 디지털과 초연결에 익숙한 세대다. 그만큼 자율적인 동시에 집단적 공감도 빠르다. 하지만 이들이 사는 세상은 성장 둔화, 고령화, 청년실업, 정부 무능·부패 등 인화성이 강해 작은 불씨로도 큰불이 될 수 있다.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청년들이 ‘공정과 정의’에 강한 의구심을 제기한 것은 그냥 뭉갤 일이 아니다. 어른들이 특권의식과 위선을 반성하지 않고, 어설픈 ‘분노 장사’를 벌이다가는 화살이 자신들을 향할 것이다. 청춘이 분노하는 이 시대가 나중에 어떻게 기록될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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