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작은 미술관’이란 이름의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새하얀 벽에 ‘대나무 의자에 잠자는 사람’을 비롯한 사진 이미지 작품 21점이 걸린 전시실이다. 가벽은 성인 남성 키를 살짝 넘는 수준으로 나지막하다. 엄숙하고 권위적인 느낌이 나는 미술관이 아니라 누구든 모일 수 있는 ‘모임의 장’으로서 ‘낮은 미술관’을 보여주겠다는 전시 의도가 엿보인다.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에서 지난 24일 개막한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박찬경’의 전시 풍경은 ‘우리에게 익숙한 미술사와 미술관이 인위적으로 주입된 틀이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박찬경 작가(54)는 “미술관은 비어 있지만 실제로 다양한 ‘모임’이 이뤄지는 중요한 공간”이라며 “미술은 미술에 대한 대화가 돼야 하며 그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계기로 전시가 있고 작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분단, 냉전, 민간신앙, 동아시아의 근대성 등을 주제로 한 영상, 설치, 사진 작업으로 국내외 미술계에서 주목받아왔다. ‘모임’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는 ‘작은 미술관’ ‘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 ‘맨발’ ‘5전시실’ 등 총 8점의 신작과 구작 ‘세트’ 한 점을 선보였다. 전시는 관람객이 미술관 안의 또 다른 미술관을 바라보도록 하는 ‘액자 구조’로 구성돼 있다. ‘작은 미술관’이 액자 구조의 시작점이다. 가벽 중간마다 뻥 뚫린 창 속을 들여다보면 이응노 작가의 ‘모임’을 프린팅한 작품이 보인다. 반대편에서 보면 전시실 중앙에 다양한 물결무늬를 새긴 시멘트 판, 나무마루 등으로 구성한 작품 ‘해인’이 창을 가득 채운다. 박 작가는 “창을 넣은 건 안과 밖을 연결하기 위한 건축적 의도”라며 “방향과 각도에 따라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점을 연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현대자동차가 2014년부터 10년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진 작가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그동안 이불(2014년), 안규철(2015년), 김수자(2016년), 임흥순(2017년), 최정화(2018년)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신작을 선보였다. 전시는 내년 2월 23일까지 이어진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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