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을 위한 두 번째 苦言

입력 2019-10-30 17:49   수정 2019-10-31 00:41

오전 6시면 어김없이 임원 사무실마다 불이 켜졌다. 덩달아 직원들도 ‘새벽 출근’을 했다. 오전 8시엔 사무실 TV에서 아침 체조 음악이 흘러나왔다. 군대처럼 다들 박자와 호흡이 척척 맞았다. 사소한 보고에도 결재판이 등장하기 일쑤였다. 상사의 식사 장소 후보까지 문서로 뽑아 결재판에 올렸을 정도다. 1년여 전 현대자동차그룹 얘기다.

그랬던 현대차그룹이 변하고 있다. 지긋지긋하던 결재판이 사라졌다. 흰색 셔츠에 넥타이를 맨 직원도 보기 어려워졌다. 상당수가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다.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 대신, 자유로운 미팅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의사결정은 빨라지고 미래자동차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협업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9월 그룹 경영을 도맡은 이후 나타난 변화다.

얼핏 보면 현대차그룹이 위기에서 벗어나 승승장구할 채비를 마친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아직 갈 길이 멀다. 정 수석부회장이 물꼬를 튼 변화는 단지 ‘시작’일 뿐이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폭스바겐 등 내로라하는 자동차회사들마저 구조조정에 내몰렸다. 동시에 미래차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피 튀기는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생존’과 ‘미래’를 함께 걱정해야 할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다.

‘본게임’은 이제부터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지금까지 ‘상징적’ 쇄신 인사를 했다면, 이젠 ‘실무적’ 쇄신 인사를 고려할 시기다. 두터워진 상무·전무급 임원 가운데 차세대 경영진 후보를 빨리 골라 발탁해야 한다. 변화의 물줄기에서 벗어난 임원은 과감히 추려낼 필요가 있다. 과연 누가 ‘현대차그룹에 필요한 사람인지’ 잘 따져봐야 한다. 온정주의는 곤란하다.

‘차이나 쇼크’도 극복해야 할 난제다. 현대·기아차의 올해 판매량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한창이던 작년 같은 기간보다도 되레 20% 가까이 급감했다. 추가 구조조정에 나설지, 아니면 전사적 역량을 동원해 ‘승부수’를 띄울지 결정해야 한다. 명확한 전략과 비전이 절실하다. 합작 파트너인 베이징자동차와 50 대 50인 기존 지분 관계에 변화를 줄지까지 고민할 때가 됐다. 과잉 상태인 글로벌 생산능력(연산 940만 대) 조정도 검토해야 할 단계다. (미국의 수입차 관세폭탄이나 노조 리스크 등은 ‘논외’다. 어차피 정 수석부회장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미래차 경쟁에선 무조건 ‘승자’로 남아야 한다. 밀리는 순간 다 죽는다. 주도권을 쥐기 위해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대한 ‘박리다매식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업체인 앱티브와 손잡고 미국에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한 것처럼 과감한 ‘동맹’이 더 필요하다. 중·장기적 전기차 배터리 수급 계획도 다시 따져보길 바란다. 머지않아 ‘배터리 파동’이 오면 옴짝달싹 못 한 채 당할 수도 있다. 배터리 공급업체와의 합작법인 설립 등 ‘큰 그림’을 미리 그려놔야 한다. 일부 미래 사업 관련 조직을 분사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듯하다. 더 빠른 의사결정과 투자를 위해서다. 향후 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도 이런 ‘디테일’을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

작년 이맘때에 이은 기자의 두 번째 고언(苦言)은 단지 정 수석부회장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현대차그룹과 얽히고설킨 8800여 곳의 부품사와 직간접 고용인력 175만 명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그의 건투(健鬪)를 빈다.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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