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월 31일 오후 2시11분
자본시장이 주도하는 기업 구조조정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해 출범한 민·관합동펀드인 기업구조혁신펀드가 2년 만에 좌초 위기에 놓였다. 투자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지만 펀드 소진율이 낮다는 이유로 국회에서 새 펀드 조성에 부정적 기류가 일면서다. 최근 자동차업계의 구조조정이 가시화되고 조선·해운·석유화학 등 전통적 주력 산업이 성장의 한계를 보이는 상황에서 기업구조혁신펀드 좌초가 구조조정 투자 시장의 냉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 1조원 펀드 조성안 무산 위기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이 추진 중인 1조원 규모 기업구조혁신펀드의 추가 조성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최근 금융위가 국회에 제출한 2020년 예산안에 국회 예산정책처가 “기존 펀드 소진율이 낮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출자액을 늘리면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기업구조혁신펀드는 산업은행 등 채권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모펀드(PEF) 등 민간 자본시장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2018년 출범했다. 정부는 지난 7월 펀드 규모를 단계적으로 5조원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금융위는 내년에 1조원 규모 펀드를 추가 조성하기 위해 1000억원의 모펀드 출자를 예산안에 포함했다.
기업구조혁신펀드는 한국성장금융과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을 비롯한 은행권이 전체 펀드 기금의 50%를 내고 나머지는 민간 수탁운용사들이 출자해 조성한다. 출범 이후 현재까지 약 1조5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5000억원가량을 투자했다. 이 가운데 1조원가량은 수탁운용사 여섯 곳이 나눠 운용하는 블라인드 펀드(투자 대상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을 모으는 펀드)다. 이 중 세 곳이 지난 4월께 펀드 결성을 마무리하고 투자를 하고 있다.
“민간 구조조정 시장 냉각”
국회 일각에선 블라인드 펀드 규모가 1조원에 달하지만 투자 실적은 저조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유암코(연합자산관리)와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등을 통해 구조조정 시장에 연간 수천억원을 투입하는 상황에서 내년에도 비슷한 목적의 펀드를 추가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구조조정업계는 수년에 걸쳐 투자를 진행하는 민간 사모펀드의 특성을 국회가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투자은행(IB) 임원은 “블라인드 펀드는 2~4년간 투자가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NH투자증권-오퍼스PE, 미래에셋벤처투자-큐리어스파트너스, 우리PE-큐캐피탈파트너스 등 민간 수탁 운용사들이 각각 3~4건의 투자를 검토 중이다. 연내 투자 마무리를 앞두고 있는 거래만 운용사당 1~2건 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업계에선 내년 펀드 조성이 무산되면 걸음마 단계인 구조조정 투자 시장이 얼어붙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대형 사모펀드 관계자는 “민간 주도 구조조정 시장을 개척하고 실력있는 운용사를 기르기 위해선 출자 사업의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5조원까지 키워나간다던 펀드가 2년 만에 무산된다면 시장 자체가 고사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김채연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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