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 지키자는 도서정가제를 왜 웹툰에 적용하나"

입력 2019-11-03 17:50   수정 2019-11-03 18:50

책값 할인폭을 강제로 규제하는 도서정가제가 웹툰과 웹소설에도 본격 적용된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도서의 유통과 심의를 담당하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도서정가제를 지키지 않은 업체를 신고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웹툰과 웹소설업계에서는 도서정가제는 동네서점을 지키자고 제정한 법인데 애당초 동네서점에서 팔지 않던 웹툰·웹소설에 도서정가제를 강요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업계와 소비자의 피해를 불러온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자출판물도 도서정가제 준수해야”

지난달 23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출판유통심의위원회는 “10월부터 전자출판물의 가격 표시 준수 여부를 파악해 법을 위반한 사업자들을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전자책 유통회사 등에 보냈다. 이번 결정은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받아 도서로 분류된 웹툰·웹소설의 도서정가제 준수 여부를 감독하겠다는 취지다.

전자출판물에 도서정가제를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공문이 공개되자 웹툰·웹소설 독자들 사이에선 “무료 웹툰과 웹소설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와 3일 오후 4시 기준 20만2000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 명을 돌파했다.

현행 도서정가제(출판문화산업진흥법 22조)는 서적의 정가를 표시하고 정가의 15% 이내에서 할인이나 사은품, 마일리지 적립 등의 혜택을 주도록 못박아둔 제도다. 책값 거품을 잡고 동네서점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2014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플랫폼 업계 “사업 모델 뒤흔드는 결정”

웹툰·웹소설 업계에선 “웹툰에 도서 잣대를 들이대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웹툰·웹소설 플랫폼 업체들 상당수는 그동안 콘텐츠 관리를 위해 ISBN을 발급받아왔다. 책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작가나 장르, 회차와 유통 플랫폼 등을 쉽게 관리할 수단이 당시로선 ISBN 외에 마땅치 않았다는 게 웹툰업계의 설명이다.

김유창 한국웹툰산업협회장은 “일부 포털사이트 업체들이 관리나 심의를 용이하게 하고자 웹툰을 게재할 때 ISBN을 요구하기도 했다”며 “따로 분류할 체계가 없어 웹툰·웹소설에 ISBN을 이용했던 것뿐인데 갑자기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이라고 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출판유통심의위원회 관계자는 “(해당 공문은) ISBN을 받은 웹툰·웹소설에 대해 가격 표시를 준수해 달라는 취지”라며 “무료 웹툰이 없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가격 표시를 감독하는 것 자체에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 플랫폼업체 대부분이 원화 표시가 아니라 자체 전자화폐를 통해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어서다. 전자화폐의 종류가 플랫폼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만큼 원화 표시를 강제하면 사업 모델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게 웹툰·웹소설 업계의 이야기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상황인데 원화 표시를 강요하는 조치는 너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번 결정이 도서정가제 강화의 일환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3년마다 도서정가제를 놓고 폐지·완화·유지 등의 조치를 결정해야 한다.

내년이 되면 3년 주기가 돌아와 도서정가제는 존폐 기로에 놓인다. 이에 일각에선 할인이나 사은품 등의 혜택 한도를 정가의 15% 이내에서 5% 이내로 강화하는 ‘완전 도서정가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정가로 판매하는 동네서점을 살리고자 서점 간 도서 가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웹툰산업협회 관계자는 “동네서점 같은 오프라인 서점이 줄어드는 건 산업 구조상 불가피한데 이번 규제는 신생 업체들의 판촉 활동만 막아서는 꼴”이라며 “다음달에 도서정가제 합의 내용을 보고 성명서를 낼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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