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공감능력 결핍 사회

입력 2019-11-05 17:19   수정 2019-11-06 00:18

20일째 계속되는 칠레 시위의 도화선은 정부의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 발표였다. 경제산업관광부 장관이 “새벽에 일어나 조조할인을 이용하라”고 말해 시민들을 격분시켰다. 대통령은 비상사태 속에서 한가로이 가족 식사를 즐기고 그 부인은 시위대를 외계인에 비유했다. 지도층의 공감능력 결핍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취소라는 국제 망신까지 초래했다.

한국 정치권도 입만 열면 ‘민주주의’와 ‘공정’ ‘정의’를 외치면서 정작 공감과 소통에서는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도 청와대와 여야 정치인들이 정파적 언쟁과 진영논리로 일관해 국민의 공분을 샀다. 고질적인 이념 갈등에 더해 경제·외교·안보·교육 문제까지 편가르기와 선동으로 일관하며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학자들은 공감의 속성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남의 처지를 충분한 사고로 이해하려는 ‘인지적 공감’과 남의 감정을 내 감정처럼 느끼는 ‘정서적 공감’, 상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늠하는 ‘공감적 관심’이 그것이다. <공감하는 능력>의 저자 로번 크르즈나릭은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해 뇌의 공감회로를 작동시키고, 남의 관점을 인정하려고 노력하면서 배려하는 마음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감능력이 부족하면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고 아집과 독선에 빠지기 쉽다. 남의 아픔에 완벽하게 공감하지 못하면서 마치 동일하게 고통받는 것처럼 행세하며 선동을 일삼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는 엄청난 전기를 쓰며 대저택에 살면서 환경보호를 부르짖는 앨 고어 전 부통령 같은 사람을 ‘공감 오남용형 인간’이라고 비꼰다.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독선과 아집도 경계해야 한다. 가치관이 비슷한 집단 속에서 ‘편향된 감정’에 사로잡히는 부작용 또한 크다. 정치권이 이를 ‘잘못된 잣대’로 악용할 땐 문제가 더 커진다. 선거를 눈앞에 둔 정당들이 ‘감성팔이’로 유권자를 유혹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만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폴 블룸 예일대 교수의 충고를 귀담아들을 만하다. “한 국가의 시민들이 우물에 빠진 아이의 소식에 눈을 떼지 못하면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안전대책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진정한 공감의 답은 가슴과 머리를 결합한 ‘효율적 이타주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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