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대우 NH투자 등 국내 증권사들이 연말이 다가오면서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미매각 해외 부동산 ‘세일즈 전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증권사들은 자체 단기자금으로 해외 부동산을 매입해 일정 마진을 붙여 국내 공제회, 연기금, 보험사 등 기관에 재매각(셀다운)하는 방식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올 하반기 들어 해외 부동산 인수 물량이 급증한 탓 등으로 기관에 재매각하지 못한 물량이 쌓이고 있어 증권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파리 빌딩만 6000억원 넘게 떠안아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이 아직 기관에 팔지 못해 떠안고 있는 해외 부동산 미매각 물량은 1조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증권사들이 올해 가장 많이 매입한 프랑스 파리 오피스빌딩만 6000억원가량이 미매각 상태로 남아 있다.
국내 최대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7월 총 1조830억원 규모의 파리 라데팡스 지역 마중가타워를 매입하기 위해 현지 조달 금융기관 대출을 제외하고 국내 펀드 3600억원, 해외 펀드 1100억원을 각각 설정했다. 국내 펀드는 지금까지 1500억원 정도가 기관에 판매됐다. 해외 펀드로 설정한 1100억원 물량은 현지투자자들과 매각 협상중이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잔여 물량에 대해 국내외 투자자들과 활발하게 협상을 진행중이며 해외 투자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투자도 라데팡스 지역의 CBX타워 지분 매각이 관건이다. 2800억원가량의 지분 중 약 30%에 해당하는 800억원어치가량이 미매각 물량이다. 하나금투는 CBX타워가 라데팡스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공실률이 낮고 연 4.75%의 수익률(캡 레이트)이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우며 기관 영업을 하고 있다.
NH투자증권과 메리츠종금증권도 라데팡스에 있는 투어에크호빌딩을 매입했지만 기관 재판매 성적이 부진하다. 두 증권사는 빌딩 지분 인수 대금으로 약 2500억원을 투입했지만 이 중 70~80%를 아직 재매각하지 못한 것으로 국내 기관들은 추정하고 있다. 한 기관 관계자는 “투어에크호빌딩은 라데팡스 중심지에서 다소 벗어난 곳에 있어 매력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NH투자증권 관계자는 “딜 종료 후 불과 한 달 남짓 지난 상황”이라며 “기관들과 매각 협의를 원활히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도 파리 서북쪽 외곽에 있는 크리스털파크빌딩 지분 3700억원어치를 매입했지만 이 중 1000억원가량이 미매각 상태다.
미매각 장기화되면 유동성에 부담
한국투자증권과 한화투자증권 등은 비교적 여유가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파리 투어유럽빌딩 지분 1735억원어치를 인수해 이 중 350억원가량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재매각했다. 군인공제회(300억원) 등 기관이 한투증권 지분을 매입한 덕분이다. 한화투자증권도 삼성증권·삼성SRA자산운용과 컨소시엄을 이뤄 총 3500억원의 파리 뤼미에르빌딩 지분을 사 그룹 계열사 등에 대부분 재판매했다.
기관들은 해외 부동산 미매각 물량이 늘어난 것에 대해 “국내 공제회와 연기금들이 지역별, 연도별 투자 한도를 설정하는 등 위험 관리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증권사들이 유럽에 편중된 부동산을 지나치게 많이 매입해 일종의 ‘소화불량’이 발생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올 들어서 프랑스 파리 지역에서만 6조원이 넘는 부동산을 매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부동산 미매각이 장기화하면 증권사들의 유동성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기관에 끝내 재매각하지 못하면 증권사들은 자칫 단기자금으로 매입한 해외 부동산을 길게는 5~7년에 달하는 펀드 만기까지 보유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장기간 해외 부동산을 갖고 있다 보면 가격 하락에 따른 투자 손실 등 ‘자금 회수 리스크’도 져야 한다”며 “증권사 실적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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