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처형을 내리는 판사'가 아니다

입력 2019-11-07 15:47   수정 2021-07-21 15:54


역사는 그 대상에 대해 가장 겸손하고 인간적인 접근을 한다. 역사는 평범한 소작농과 하인들의 평범한 삶부터 권력가와 부자들의 화려한 세상까지, 또 그 사이에 있는 다양한 차이와 인간사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역사는 인류의 업적과 성취에 대해 균형 잡히고 정직한 기록을 제공한다. 역사는 또 관대한 것이다. 결함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삶을 살게 됐는지, 그 복합적인 동기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어쨌든 우리는 역사라는 것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요즘 역사는 우리의 마음을 넓히는 대신 좁히는 데 점점 더 많이 이용되고 있다. 역사는 우리 자신을 더 깊게 하고 또 성숙하고 복잡한 과거관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기계적으로 목표를 선택하게 하는 단순한 수단으로 많이 악용되고 있다.

가장 좋은 예는 편협한 군국주의는 물론이고 바그너의 오페라를 감상하는 것까지 모두 히틀러의 나치즘과 연관시키려는 것이다. 나치즘이 만연한 시기의 모든 것을 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민주당 하원의원은 미국 남부 국경의 수용소를 열악한 ‘집중 수용소(concentration camps)’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이 젊고, 분노를 억누를 수 없는 민주당원은 미국인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이것(열악한 수용 환경)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다. 하지만 그 역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는 이런 감정적인 언어를 쓰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역사와 현실에 대한 올바른 코멘트가 아니다.

더 충격적인 예는 과거의 영웅들에 대한 ‘판결’을 서둘러 내리는 것이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우드로 윌슨 등의 기념물을 철거하거나 이름을 바꾸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과거 위인들이 현재 우리의 기준(스펙)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런 예우를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우리는 현재와 과거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판단력이 흐려져 있는 것은 아닐까.

워싱턴 등 세 사람 모두 노예나 인종 차별주의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필요 없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이 각자 인생을 통해 이룬 다른 모든 것이 그 한 가지 사실에 묻히는 게 과연 정의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역사적 기록을 잔인하게 단순화하고 역사를 무기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을 특출나게 만든 거의 모든 것이 노예제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뉴욕타임스의 대담한 접근이 그런 예다.

진정한 역사적 접근은 워싱턴이 노예를 소유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단편적인 사실만 봐서는 긴 삶의 여정에서 갖는 의미를 간과할 수 있다. 우리는 워싱턴의 신념과 행동을 그가 살던 시대적 맥락에서 신중하게 저울질해야 할 것이다. 당시는 노예 석방이라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시대였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세부적이고 복잡한 것들은 어제의 유행처럼 사라지고 있다. 역사는 너무 단순화되고 있다. 역사를 무기로 만드는 것은 역사에 대해 놀랄 만한 적개심을 품게 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아주 많은 사실이 있는 거미줄에서 한 가지 사실만 잘라낸 다음 원하는 대로 결론을 낸다. 다음은 시위자들이 구호를 외치는 것처럼 그 사실을 반복하는 데 만족한다.

이런 공격적인 역사적 단순화는 현재 미국 사회는 물론이고 대학 캠퍼스를 지배하는 문화의 핵심이다. 의심할 여지 없는 집단적인 고충을 토로할 때는 많은 경우 그 권위를 역사에 의존한다. “역사적으로 이런 경우는 없었다” “이렇게 힘든 적이 또 있었나” 등으로 말이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이런 주장을 위해 동원한 역사는 단지 편협하고 단편적인 역사인 게 대부분이다.

어떤 특정 상황과 역사를 쉽게 연관시킬 수는 없다. 모든 논쟁에서 반박할 수 없는 주장을 구성하기 위해 역사의 권위를 억지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역사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인정되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갖는다.

왜 과거를 공부하는지 생각해보자. 정말 현재의 전투에 사용할 더 나은 무기, 우리의 불평에 대한 더 나은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그것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일단 역사가 왜곡되기 시작하면 역사 자체의 신뢰가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와의 연속성을 가져다주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질 어둠에서 소중한 기억을 건져낸다. 만약 우리가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왜곡되고 악용되고 있는 것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역사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는 ‘처형을 내리는 판사’가 아니라 ‘과거를 기록하는 천사’여야 한다고 가르친 역사학자 허버트 버터필드의 인간적인 통찰력을 되찾아야 할 때다.

원제=The Weaponization of History
정리=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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