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대 상산고 이사장(사진)의 목소리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홍 이사장은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젠 다 내려놓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하고 싶은 말도 없고, 대응하고 싶은 생각조차 없다”고도 했다.
다시 ‘사지’로 내몰린 상산고
상산고는 지난 6월 자율형사립고 재지정 평가에서 전북교육청으로부터 기준 점수인 80점에 0.39점 못 미치는 79.61점을 받아 지정 취소 처분을 받았다. 전북 인재 양성의 산실로 여겨지던 상산고의 최대 위기였다. 하지만 교육부는 전북교육청의 평가를 위법하고 적정성도 부족하다고 판단해 부동의 결정을 내렸다. 기사회생이었다. 어수선하던 학교 분위기가 안정을 되찾아가는 듯했다.
7일 교육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한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 일괄 폐지를 선언하면서 상산고는 다시 사지에 내몰리게 됐다. 홍 이사장은 “자사고는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를 거치며 오랜 숙의 과정 끝에 도입된 학교”라며 “하루아침에 정책을 뒤엎어 학교를 폐지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상산고는 홍 이사장이 1981년 사재 수백억원을 내서 설립한 학교다. 그는 설립 이후에도 한 해 20억~30억원의 전입금을 학교에 투자했다. 수험생 필독서로 여겨지는 <수학의 정석> 판매 이익의 상당액이 학교로 들어간 셈이다. 홍 이사장은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고 개인 출연금으로 좋은 학교를 운영하겠다는데 이를 정부가 가로막고 있는 것”이라며 “요즘 일어나는 일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이 없다”고 토로했다.
“왜 사학을 시작했는지 후회스럽다”
홍 이사장은 자사고를 악(惡)으로 몰아가는 정부에 대한 억울한 마음도 털어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교육관계장관회의에서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교육 불평등의 주원인으로 꼽았다. 교육부는 7일 시행령 개정을 통한 자사고 일괄 폐지 계획을 밝히기 이틀 전 급조한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를 발표하며 특수고를 고교 서열화의 근원으로 몰아갔다.
그는 “정부는 사학을 운영하는 사람을 마치 몹쓸 짓을 한 사람처럼 대우하고 있다”며 “평생 가꿔 온 학교를 없애면서 양해를 구하거나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왜 사학을 시작했는지 후회스럽다”며 “이런 여건에서 사학을 운영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싶다”고 덧붙였다.
홍 이사장은 상산고를 비롯한 지방 자사고와 특수고가 사라지면 지방 교육 자체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나지막이 대답했다. “이제 그런 것은 제가 할 걱정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나라님’이 할 일이죠.”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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