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국회에서는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 5명에 더해 참여연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공동 주최자로 나선 토론회가 열렸다. 힘 있는 기관들이 함께 행사를 주최하면서 도대체 무슨 토론회냐는 말까지 오갔다. ‘사회서비스원 법제정 촉구를 위한 토론회’라는 이름에서 보듯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정부를 압박하는 자리였다.
국민에게 아직 생소한 사회서비스원은 앞으로 출범하게 될 초대형 공공기관이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사회서비스원은 2022년 고용 인원이 6만3000명에 달해 현존하는 공공기관 중 가장 큰 국민건강보험공단(1만6118명)의 네 배 규모가 된다. 보육과 노인, 장애인 관련 복지서비스를 모두 통합해 하나의 기관에서 처리하도록 한다는 목표다. 국공립 노인요양원과 어린이집 등의 관리가 사회서비스원으로 일원화되며, 민간 요양센터에 고용된 42만 명의 노인 요양보호사 중 3만여 명도 직접 고용할 예정이다.
거대 복지공단을 출범시키면서 정부는 법적인 근거 없이 시범사업부터 시작했다. 관련 법률이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에서 올해 서울 경기 대구 경남 등 4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산하에 지역 사회서비스원을 출범시켰다.
이 사업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지에 대해 제대로 된 예산 계획도 수립하지 않았다. 지금은 민간에 시간제로 고용돼 있는 노인 요양보호사를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하는 데만 매년 4000억원 안팎의 추가 세금이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만 나오고 있다. 비용뿐만 아니라 민간에 위탁된 서비스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참여연대는 사회서비스원 설립을 통해 민간에서 이뤄지는 복지서비스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시범사업 첫해인 올해 벌써 서울 사회서비스원 노조를 결성하는 등 조직력 확대의 기회로 삼고 있다. 시민단체의 압력에 밀려 정부가 거대 공공기관 설립을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센 이유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올해 59억7000만원인 관련 예산을 내년에는 120억5000만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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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사·보육교사 6만3천명 고용…사회서비스원 '돈 먹는 하마' 되나
보육·노인·장애인 지원 전담하는 복지공단 만드는 정부
사회서비스원 설립은 지난 대통령선거 때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서비스공단’이라는 이름으로 공약했던 사항이다. 장애인과 노숙자 지원을 포함한 모든 보육 및 노인 관련 공공서비스를 한데 모아 제공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민간에 위탁한 국공립 어린이집과 노인요양원 등을 국가가 관리하고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도 일부는 직접 고용해 처우를 개선할 계획이다.
하지만 사실상 요양보호사 직접 고용이 전체 사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사업에만 매년 4000억원 안팎의 추가 예산 지출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정부가 요양보호사를 직접 고용하는 게 민간에 위탁할 때보다 서비스 질과 비용 지출 측면에서 더 나은 것인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민간위탁 대신 직접 하겠다는 정부
사회서비스원은 올해 시범사업 명목으로 서울과 경기도, 대구시, 경상남도 등 4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산하에 설립됐다. 여기에 고용된 1700여 명의 인력 중 요양보호사는 800명가량이다.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200억원 정도 예산이 투입됐고, 이 중 최소 절반이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에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계획대로 2022년까지 사회서비스원이 전국 모든 광역 지자체에 확대 설치되고 6만3000명의 인력을 새로 고용할 때 이 중 3만 명 이상은 요양보호사로 채워진다. 올해 예산을 기준으로 하면 늘어나는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에 매년 3750억원의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요양보호사들은 2008년 시행된 장기요양보험에 따라 가사와 간병이 필요한 노인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기요양보험료를 재원으로 일한 시간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이 급여를 지급하기 때문에 추가 재정지출은 없다. 하지만 민간에서 시간제로 일하던 요양보호사들을 지자체 산하 공단의 정규직으로 바꿔 고용하면 각종 수당이 추가로 지급돼야 한다. 돌보는 노인이 없더라도 급여가 지급되고 근무 기간 증가와 함께 퇴직금과 연차수당도 오를 수밖에 없다.
복지부는 각 지자체 서비스원이 요양보호사를 100명 이상 고용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 추가 재정 투입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연구용역을 통해 표준모델까지 만들었지만, 취재 결과 이는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복지부는 표준모델에서 요양보호사의 20%는 하루 3명의 노인을, 30%는 하루 2명의 노인을 돌보며 장기요양보험에서 충분한 급여를 받는 것을 전제로 삼았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 요양보호사 한 명이 책임지는 노인은 평균 1.5명에 못 미친다. 장기요양보호 대상 노인이 67만 명인데 현재 활동 중인 요양보호사는 42만 명이다. 복지부는 이 같은 모델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 얼마의 예산을 쏟아부어야 하는지 분석도 하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압박에 졸속 추진
복지부는 사회서비스원이 요양보호사 상당수를 직접 고용하면 민간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의 처우 개선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세금 추가 투입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사회서비스원 대신 민간 시장을 작동시킬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7년 법 개정으로 사업자는 장기요양급여의 86.4% 이상을 인건비로 지출하도록 규정했지만 77%가량이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에게 법 기준을 지키게 하는 것만으로도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과 영세사업자 퇴출 등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정부 관계자도 “이 정도 규모의 공공기관을 만들면서 법 제정 없이 시범사업부터 시작하는 것은 유례가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의 압박에 밀려 정부가 편법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김경자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등은 “정부가 야당 눈치를 보며 사회서비스원 사업에 소극적”이라며 정부 측 인사를 강하게 압박했다.
참여연대는 대선이 치러지던 2017년 이전부터 사회서비스원 설립의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시범서비스가 시행된 올해부터는 민주노총이 조직적으로 사업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서울시 산하 사회서비스원에는 벌써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구성돼 서울시 측과 단체협상에 들어갔다. 서울사회서비스원장이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사업실장 출신이기도 하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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