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르는 ‘직접고용’ 판결
근로자성이란 고용계약을 맺지는 않았지만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로 볼 수 있다는 의미로, 근로자성을 인정받으면 연차수당, 퇴직금 등의 권리를 얻게 된다. 위탁계약을 맺었더라도 근로자성이 인정되면 사업주의 인건비는 늘어나게 된다.
최근 법원에서는 과거 독립 사업자로 판단했던 사안에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8월 목포 소재 A조선소의 하청업체와 도급 계약을 맺은 물량팀장 B씨를 사업자가 아니라 하청업체의 근로자라고 판결했다. 도급 계약이 종료된 팀원들이 체불임금 진정을 한 사건으로 검찰은 B씨를 사업주로 보고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은 B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하청업체에 지급 명령을 내렸다. 체불임금 지급 의무는 ‘사장’인 B씨에게 있다는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논리대로라면 건설현장을 옮겨다니며 팀을 꾸려 일감을 받는 팀장(작업반장)도 해당 건설사의 근로자가 된다.
대부분 위탁계약으로 운영되는 검침원이 근로자라는 판결도 나왔다. 9월 서울행정법원은 경북 포항시가 검침 결과를 조작한 검침원과의 위탁계약을 해지했으나, 이를 부당 해고라고 소송을 제기한 C씨의 손을 들어줬다. 계약 형태는 위탁이지만 사실상 포항시가 업무를 지시·감독해 사실상 근로자라는 판결이었다.
불법파견 범위를 크게 넓힌 판결도 있었다. 차량을 수출선에 선적하는 탁송 근로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은 8월 “파견법상 파견이 금지된 제조업 업무는 직접생산 공정뿐만 아니라 관련 공정도 포함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즉 이들이 2년 이상 파견 근무하면 원청 근로자가 된다는 파견법에 따라 현대자동차의 근로자라고 판결한 것이다.
인권위에 정부까지 가세
이달 들어서는 정부도 민간 기업의 직접고용 압박에 가세했다. 고용부가 요기요의 위탁 배달대행 기사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맞다”고 판단한 게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플랫폼 경제 종사자에 대한 정부의 직접고용 압박이 시작됐다는 논란이 일자 고용부는 “요기요 관련 근로자성 판단은 특수한 경우”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통상적인 플랫폼 일자리 종사자와는 달리 건별 수당이 아니라 고정급을 받았고 오토바이도 제공하는 등 사실상 고용관계였다는 설명이지만 업계에서는 파장을 주목하고 있다.
같은 날 인권위가 고용부에 권고안을 낸 것도 이 같은 일련의 흐름과 관련이 적지 않다. 인권위는 고용부에 대법원 판례를 반영해 파견 판단 기준을 지침에서 법령으로 상향하고 불법파견에 대한 적극적인 감독을 주문했다. 검찰이 타다를 ‘유사 택시업체’로 단정해 기소한 지 1주일 만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법원에 이어 검찰까지 나서 혁신기업 타다를 졸지에 택시회사로 만들어버렸다”며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따른 다양한 고용 형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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