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바쁜 둔촌주공, 이번엔 공사비 검증 '암초'

입력 2019-11-11 17:23   수정 2019-11-12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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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등 분양가 상한제를 피해 분양을 서두르던 재개발·재건축 사업장들에 ‘공사비 검증’이라는 새로운 복병이 등장했다. 지난달 24일부터 일정 비율 이상 공사비가 늘어난 정비사업장은 의무적으로 검증절차를 거쳐야 해 ‘분양가 상한제 유예기간’인 내년 4월 29일 전에 일반분양이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아직 검증절차에 대한 세부안이 확정되지 않은 데다 보완 요구 등 변수까지 감안하면 상당수 사업장이 낭패를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상한제 피한 줄 알았는데…

둔촌주공 재건축조합은 다음달 7일로 예정했던 관리처분변경 총회를 몇 달 연기해야 할 판이다. 총회 안건에 공사비 증액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어 한국감정원 등으로부터 먼저 공사비 검증을 받아야 관리처분계획변경 인가 등 남은 행정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 사업장은 총가구 수를 926가구 늘리는 등의 설계변경을 하면서 공사비가 당초 계획보다 10%이상 늘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에 따르면 △조합원 5분의 1 이상이 검증을 요청하거나 △공사비 증액 규모가 5% 이상(사업시행인가 이전 시공사 선정 시 10%이상)인 경우 반드시 공사비 검증을 받아야 한다. 건설사 관계자는 “인건비 및 물가상승률, 품질 강화와 관련한 법 개정 등을 고려하면 전국에 있는 모든 사업장에 의무 적용 다”고 호소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관리처분계획인가와 이주 등을 마쳐 분양가 상한제를 피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사업장들이다. 총가구가 1만2000가구에 달해 ‘건국 이래 최대 재건축사업’으로 꼽히는 둔촌주공과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1단지 등이다. 둔촌주공은 당초 다음달 7일 관리처분변경 총회를 시작으로 남은 행정절차 등을 마무리하고 본공사 착공, 내년 초 일반분양 등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사비 검증이 의무화되면서 석 달가량의 시간이 더 들어가게 됐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한 번만 보완 요구가 나와도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과 재검증을 받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사실상 유예기간 내 분양을 담보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상가조합원 등과의 갈등이 원만하게 해결되면 가까스로 4월 안 분양을 노려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던 개포주공1단지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 조합원은 “아무런 변수 없이 일정이 진행되더라도 상한제를 피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데 공사비 검증까지 하라니 초조할 뿐”이라고 말했다.

서류 준비에만 10억원 “비현실적”

공사비 검증 절차를 서두르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점도 조합원들이 답답함을 호소하는 대목이다. 법은 지난달 시행됐지만 세부안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지난달 15일 세부안을 공고했고 지난 5일까지 공고안에 대한 의견 제출을 받았다. 국토부는 이달 안에 세부안을 확정 공고할 계획이다.

초안에 대해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실적으로 제출이 불가능한 서류들이 포함돼 있고 검증기간도 지나치게 길다는 게 정비업계의 주장이다. 둔촌주공 시공사 관계자는 “처음부터 내역 입찰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서류를 만드는 데만 2개월이 걸리고 협력업체를 통해 각종 서류를 준비하는 데만 약 10억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산됐다”며 “주 52시간 근로 시행 등 법규가 강화되면서 올라간 공사비만 해도 상당한 데 검증 과정에서 지나치게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개정안에 제출하도록 열거된 실시설계도면은 착공 직전에나 작성하고 ‘공량산출서(공정별 인원 서류)’ 등은 민간 공사비에선 아예 작성하지 않는 공공용 서류”라며 “사업이 장기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검증기간을 60일로 통일하고 보완 횟수도 한 번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공사에 대한 한국감정원의 전문성 결여와 5000만원에 이르는 검증수수료도 문제로 꼽힌다. 이동주 한국주택협회 정비임대팀장은 “수수료 부담 및 사업 지연 등으로 다수의 사업장에서 조합원 부담금이 늘어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수주부터 한 뒤 내역도 없이 공사비를 증액하는 관행과 이 과정에서 조합 내 갈등과 손실이 발생하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취지”라며 “제대로 된 검토를 하기 위해 필요한 제출 서류와 기간을 제시한 것이며, 공사비 증액과 무관한 서류는 굳이 낼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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