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정원 규제'에 막힌 AI인재 육성

입력 2019-11-11 17:23   수정 2020-10-28 18:44


서울대 공대가 인공지능(AI) 인재 양성을 확대하기 위해 2022학년도부터 정시 모집인원 일부를 무전공으로 뽑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수도권 규제 등에 막혀 컴퓨터공학부 정원이 15년째 묶여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차국헌 서울대 공대 학장은 11일 “이르면 2022학년도 입시부터 정시 전형 신입생의 3분의 1을 전공 구분 없이 공대 소속으로 뽑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 학생들이 2학년 때 컴퓨터공학부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 결과적으로 컴퓨터공학부 정원을 70명가량 늘리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는 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과목을 가르치는 전공으로 최근 이 분야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급격히 커졌다. 하지만 정원(55명)은 15년째 그대로다. 1982년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이 대학 정원 확대를 막고 있어서다. 정원을 늘리려면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교육부는 학령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대 정원을 늘리면 지방대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허가해주지 않고 있다. 정원을 늘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서울대가 입시 방식을 바꾸는 ‘고육지책’을 내놓은 것이다.

규제에 묶인 서울대와 달리 미국 스탠퍼드대는 컴퓨터공학과 정원을 2008년 141명에서 올해 745명으로 다섯 배 넘게 늘렸다.

차 학장은 “세계가 AI 인재 양성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 수도권 규제에 묶여 있다고 손을 놓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다”며 “다른 전공은 정원이 줄어드는 방식이라 학과 사이에 진통이 있었지만, 지금은 교수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AI 등 첨단 분야 대학 입학정원을 8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수도권 규제와 대학 정원은 그대로 둔 채 결손 인원을 활용한 학과 신설을 허용하는 방식이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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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컴퓨터공학부 55→120명 늘려도
"글로벌 AI 경쟁엔 태부족"


“수도권 정원 규제는 꿈쩍도 않지, 학과 간 조율은 언감생심이지, 이대로 가다간 인공지능(AI)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차국헌 서울대 공대 학장)

서울대 공대가 신입생 선발 방법까지 바꿔가면서 컴퓨터공학부 정원을 늘리려 하는 것은 이런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서울대가 내놓은 대책으로도 AI 인재를 원하는 사회적 수요를 맞추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대학의 총정원이 묶여 있는 상태에서 다른 학과들 사이의 이해관계 조율이 쉽지 않아 특정 학과의 정원 확대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전공과 관련해선 정부가 전향적 자세로 정원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인재 턱없이 부족

서울대 공대가 추진하는 컴퓨터공학부 정원 확대 방안은 공대 산하 11개 전공의 정시 모집인원 가운데 3분의 1을 전공 없이 뽑은 뒤 2학년 때 컴퓨터공학부를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르면 2022학년도 신입생부터 도입될 전망이다. 서울대의 대입전형 예고자료에 따르면 2022학년도 서울대 공대의 정시전형 모집인원은 총 220명이다. 이 가운데 3분의 1은 73명 내외다. 서울대는 이들이 결과적으로 컴퓨터공학부를 선택해 컴퓨터공학부 정원이 현재의 55명에서 120여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추후 사회적 수요가 변화하면 70여 명의 정원은 컴퓨터공학부가 아닌 다른 전공으로 배정될 수도 있다. 학과별 정원을 직접 늘리고 줄이는 방식이 소규모 학과의 격렬한 반대로 사실상 무산되자 정원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차국헌 학장은 “사회 변화에 따라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유연한 학제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최근 정부가 정시 확대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정시 정원 모두를 학과 구분 없이 뽑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정시와 달리 수시 입학생은 지원할 때부터 자기소개서 등으로 명확한 비전을 갖고 학과에 지원하는 만큼 정시전형 입학생만 무학과로 뽑겠다는 게 공대 측의 설명이다.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그러나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전공자가 70여 명 늘어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력 규모에 비해선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부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지난해 발표한 자료를 통해 올해부터 2022년까지 4년 동안 국내 AI 인력이 9184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대의 컴퓨터공학부 정원 확대가 이르면 2022학년도 신입생부터 도입되기 때문에 학사학위라도 보유한 인재가 추가적으로 업계로 나오려면 2026년이 돼야 한다. 최소한 7년은 극심한 인재 가뭄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다.

“대학 정원 규제 완화해야”

기업과 학생 수요에 맞게 학과 정원을 유연하게 조정해온 국내 대학은 KAIST 정도다. KAIST 학생들은 2학년이 되면 희망에 따라 전공을 선택한다. 올해엔 전기전자공학과(174명)와 전산학부(157명) 선택 인원이 가장 많았다. 두 학과에 지원한 인원은 10년 전인 2009년의 세 배 수준이다.

그러나 다른 대학들에 자체적인 정원 조정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비인기 학과에서 반발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한양대는 AI 인재 육성을 목표로 내년에 출범할 데이터사이언스학과에 어렵사리 정원 20명을 배정했다. 한양대 관계자는 “정원 조정 문제는 감축 대상 학과엔 존폐의 문제로 여겨진다”며 “19개 학과에서 한두 명씩 줄이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수요를 뻔히 알고도 정원을 조정할 시도조차 못한 대학도 많다.

교육부는 대학의 정원 확대에 대해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대는 학생이 없어 쓰러져가는 상황에 일부 대학에만 정원 확대의 특혜를 주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AI, 빅데이터 등의 분야는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분야인 만큼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하순회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장은 “AI 관련 전공은 정원을 웬만큼 늘려서는 사회적 수요를 따라갈 수 없다”며 “정부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정원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진/김동윤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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