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이 ‘외부감사인(회계법인) 등급하향 신청제’를 도입한 지 한 달 만에 제도 손질을 검토하게 됐다. 기업들이 무더기로 외부감사인을 바꿔달라고 요청하면서 감사인 지정의 취지 자체가 무색해질 거란 우려 때문이다.
1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외부감사인 등급하향 신청제의 적용 대상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횡령·배임, 감사인 선임절차 위반 또는 감리조치를 받는 등 제재의 일환으로 감사인을 지정받게 된 기업은 이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외부감사인 등급하향 신청제는 기업이 지정받은 회계법인을 변경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준 제도로, 금융위가 지난달 초 ‘외부감사규정’을 개정해 도입했다. 기업과 지정감사인이 각각 가~마로 등급이 나뉘는데, 과거엔 기업보다 등급이 높은 회계법인에만 재지정 요청을 할 수 있었지만 규정 개정 이후엔 등급이 낮은 회계법으로도 다시 지정해달라고 신청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감사인 지정 대상 기업들이 일제히 ‘중소 회계법인으로 바꿔달라(하향 신청)’고 나섰다. 지난달 말까지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감사인 재지정 신청 건수는 300건을 넘어섰다. 내년 감사인 지정 대상의 40%에 달하는 수치다. 재지정 신청 대다수는 삼일·삼정·한영·안진 등 이른바 ‘빅4’ 회계법인에 배치된 직권지정 기업들이 중소 회계법인으로 바꿔달라고 하향 신청을 한 것이다. 대형 회계법인의 감사가 깐깐한 데다 감사 보수가 상대적으로 높을 것을 우려해서다.
중견기업인 오뚜기 역시 회계법인 등급 하향을 신청했다. 오뚜기는 그동안 중형급 회계법인으로 등록된 성도이현회계법인에서 감사를 받아오다 내년에 대형 회계법인인 삼정KPMG로 지정받자, 다시 중소형 회계법인에 감사를 받겠다고 재지정 신청을 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2017년 청와대에 초청될 정도로 모범기업으로 꼽힌 오뚜기까지 등급 하향을 신청했다는 건 중소기업의 감사보수 상승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규제 완화의 취지가 퇴색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난달 ‘주기적 감사인 지정’ 대상 회사 220곳과 ‘직권지정’ 회사 635곳 등 총 855곳을 선정해 사전통지했다.
금감원은 지정 감사인을 확정해 12일 우편으로 각 기업에 통지할 예정이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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