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과 충돌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괴롭힘 신고가 들어오면 사업주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가해자 전보·징계 등의 조치를 해야 하는데, 가해자가 노조와 관련돼 있으면 자칫 정당한 노조활동을 방해하는 부당노동행위로 몰릴 것을 우려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현행법상 사용자에게만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졸속 입법이 낳은 부작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도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 대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활용해 △업무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괴롭힘으로 정의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법 시행과 함께 낸 가이드라인에 ‘관계의 우위’와 관련해 ‘노조 등 근로자조직의 구성원 여부’도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노조가 집회나 파업 불참을 이유로 벌금을 내게 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통상적인 개념의 괴롭힘은 지위가 높은 상급자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개정 근로기준법이 포괄하고 있는 괴롭힘의 범위는 매우 넓다”며 “사측과 교섭력을 가진 노조 등 집단의 힘을 이용한 따돌림 같은 행위도 해당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립적인 노사관계에서 노조에 의한 괴롭힘 진정 사건이 발생할 경우 사업주는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직장 내 괴롭힘 대응 지침을 담은 근로기준법을 지키려다 노조에 의해 부당노동행위 고발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당노동행위 처벌은 최대 징역 2년이다.
근로기준법과 노조법 충돌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의 충돌 우려는 법 시행 때부터 예견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법 시행 한 달 전인 지난 6월 소속 사업장에 대응지침을 내렸다. 민주노총은 지침에서 “사용자가 노조의 가입 홍보 활동을 비조합원에 대한 괴롭힘 행위로 주장하며 악용할 수 있다”며 “정당한 조합활동을 괴롭힘으로 제재하는 것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므로 조직적 투쟁으로 대응하라”고 했다.
주무 부처인 고용부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는 범죄 성립 요건이 까다로워 직장 내 괴롭힘 조사와의 충돌 우려는 거의 없다”는 입장이다. 부당노동행위로 고발되더라도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는 적다는 얘기다. 2017년 부당노동행위 관련 고소·고발 사건 752건 가운데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67건(5.7%)이었다. 하지만 부당노동행위 사건은 기소까지 가지 않더라고 신고만으로도 사업주가 노동위원회에 출석해야 하는 등 회사로서는 큰 부담이라는 게 경영계의 지적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사용자뿐만 아니라 노조에 대한 처벌 근거도 마련돼야 한다”며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동계 요구만 대폭 반영한 노조법 개정안에 찬성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