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정기국회 종료를 앞두고 붕어빵 찍어내듯 무더기로 법안을 통과시켜 온 국회의 구태(舊態)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여야가 시간에 쫓겨 ‘합의 법안’이니 ‘비쟁점 법안’이니 하면서 한꺼번에 통과시킨 것들 중에는 기업 경영을 옥죄는 독소 조항이 적지 않아서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엉터리 구호에 갇혀 지난해 제대로 심의도 하지 않고 통과시킨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사소한 안전사고에도 공장이 멈춰서고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기업인이 감옥에 가야 할 처지다. 소재·부품 연구개발을 가로막는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 중소기업 구인난과 근로자 생활고를 가중시키고 있는 강압적인 주 52시간 근로제 등도 마찬가지다.
더 큰 문제는 법안을 처리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어떤 법안이 ‘비쟁점’으로 올라왔는지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어제 상정한 법안은 유턴 기업 지원을 담은 ‘해외진출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99건이다. 여야 지도부는 이들 99건을 ‘비쟁점 법안’으로 꼽고 있다. ‘데이터 3법’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 ‘비쟁점 법안 120건’이 어떻게 나왔는지 속 시원하게 설명하는 국회의원이 없다.
이런 모습은 “의원들이 과연 법조문을 제대로 읽어보기는 할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대학교수를 지내 관련분야 전문가라 불리는 의원들조차 “어떤 법안이 상정될지 개회 직전에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 “다른 상임위원회 소관 법안은 본회의장에서 리스트만 쭉 보는 정도”(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라고 고백하는 실정이다.
내용도 모르고 법을 양산하는 상황에선 여야 간 법안 거래가 판을 칠 가능성도 높다. 여야가 다른 법안을 흥정하면서 끼워 놓고, 한꺼번에 묶어서 떨이로 처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에도 쇼핑몰 영업규제를 강화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등 ‘무늬만 경제활성화법’이란 지적을 받는 정부·여당의 이른바 ‘민생·경제 법안’들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모든 법에는 그 법으로 혜택을 받는 사람이 있고,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국회 법안 심의와 처리가 환자의 생명이 달린 외과 수술에 못지않게 섬세하고 조심스러워야 하는 이유다. 국회가 민생과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겠다면 법안을 졸속 처리하는 구태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지뢰처럼 법안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독소조항을 걸러내는 게 중요하다. 여야는 지금 당장 법안 심의부터 다시 해 철저히 옥석을 가려야 한다. 시간이 빠듯해 심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경제계가 우려하는 법안은 처리를 유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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