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시리즈의 조작 논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생방송 투표 순위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는 담당 연출자 안준영 PD와 김용범 CP가 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된 가운데 수사망이 CJ ENM 전반으로 확대됐다. 경찰은 Mnet 부문 대표를 맡고 있는 CJ ENM 신형관 부사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그를 피의자로 입건해 혐의를 살펴보고 있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매주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며 그룹 아이오아이, 워너원, 아이즈원, 엑스원을 배출시켰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명가인 Mnet의 노하우와 탄탄한 팬덤을 형성하는데 유리한 아이돌의 장점을 결합한 '프로듀스'였기에 파급력은 도드라졌다. '프로듀스' 출신 아이돌들은 K팝 그룹으로 글로벌한 영향을 지니는 것은 물론, 각종 예능프로그램 및 광고에서도 섭외 우선순위에 들었다.
'프로듀스'는 시청자들의 꾸준한 온라인 투표, 최종 생방송 경연에서의 유료 투표 등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국민 프로듀서' 시스템을 적용했다. 내 아이돌을 내 손으로 직접 데뷔시킨다는 점이 프로그램이 지닌 강점이자 핵심이었다. 그렇기에 조작 논란은 '프로듀스'의 제작 근간부터 이를 통해 탄생한 그룹들의 정당성마저 앗아가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에 시청자들의 분노와 배신감은 더욱 거세져 '프로듀스' 제작진부터 유착 의혹이 제기된 기획사 및 CJ ENM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CJ ENM은 내 투표값 100원 돌려내라"
특히 최종적으로 멤버를 선발하는 파이널 생방송에서 진행된 투표가 문제가 되고 있다. 1건 당 100원이 드는 '유료' 투표였기 때문이다. 온라인 상에서는 투표값을 돌려 받을 수 있는지, 가능하다면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를 두고 여러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100원의 투표값을 돌려 받을 수 있을까?
일단 가능은 하다. 정연덕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업무방해와 사기 혐의 등에 대한 1심 판결 이후 민사 소송을 제기해 받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칙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사람만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민사는 혐의를 입증하는 게 어려운데 형사 1심 판결문이 내용에 따라 중요한 입증 자료가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손해를 배상하는 사람이 돈이 있어야 한다. 소송에서 이겨도 상대가 돈이 없다면 받을 수가 없다"고 배상 능력에 대해 강조했다.
형사 1심 판결에서 사건의 책임이 안준영 PD 개인에게 돌아가느냐, CJ ENM의 개입이 있었느냐에 따라 실제로 배상이 이루어지는 부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 교수는 "불특정다수의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을 걸어야 하는데 PD 개인이 저지른 일이라는 결론이 나면 손해배상을 개인한테만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CJ ENM이 조작을 공모했거나 방조, 방임했다면 회사한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배상 금액에 대해서는 "민사 소송을 가봐야 안다"면서 "투표한 금액도 100원, 500원, 10000원 등 다 다를 거다"며 "정신적 위자료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동일한 금액으로의 지급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투표를 위해 쓴 100원을 소비 측면에서 볼 수는 없을까. 2008년 서태지의 팬들은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모바일투표 집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엠대위(엠넷 사태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투쟁을 벌여 문자투표비를 환불 받은 사례가 있다. 이들은 한국소비자원과 공정거래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한 끝에 1건 당 242원의 문자투표 금액을 환불 받았다.
'프로듀스' 조작 논란과 관련해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아직까지 피해구제가 신청된 것은 없다. 현재 주요 이슈로 다루고 있는 건에는 없는 상태"라며 "피해구제 신청이 들어오면 해명 요청 통지를 하는 등 사실 확인에 나선다"고 전했다.
안준영 PD는 '프로듀스' 시즌 3, 4에 해당하는 '프로듀스 48'과 '프로듀스X101'의 조작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시즌 1, 2에 대해서는 부인했으나 경찰은 이 두 시즌에서도 역시나 최종회 방송과 시청자 투표 데이터 사이에 다른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프로듀스' 자체가 조작 프로그램이었다는 오명을 씻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도 관련 민원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방심위는 시즌 4인 '프로듀스X101'의 투표 조작 의혹과 관련해 이르면 다음 주 중 의견진술에 대한 심의 일정을 결정할 예정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시즌 4에 대해서는 이미 심의 중에 있다. 의견진술 청취가 결정돼 다음 주 중 위원들이 심의 일정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나머지 시즌들에 대해서도 조작 관련 보도가 나왔는데 여러가지가 결부된 사안이라 원본 영상 확인 등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필요하다. 사건을 병합하게 될지에 대해서도 추후 위원들이 논의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심위가 '프로듀스' 조작 건으로 Mnet에 가할 수 있는 최대 징계 수위는 과징금 3000만원이다. 해당 방송 프로그램의 정정·수정 또는 중지도 가능하지만 사실상 프로그램이 종영된 상황이라 큰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조작' 범주에 들지 않았으나 해당 논란으로 활동에 타격을 입은 멤버들과 부당하게 순위에서 밀려난 연습생들이다. 이들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책임도 불가피하지만 어떠한 형식으로 이루어질 것인지 가장 난감한 부분이기도 하다. 정연덕 교수는 "순위가 떨어져 데뷔하지 못한 친구들은 1심 판결문을 토대로 소송을 걸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 위자료는 3000~5000만원 정도로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무엇보다 추후 연예계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라면 선뜻 소송을 제기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생각을 전했다.
'조작' 혐의로 신뢰를 한 번에 잃은 CJ ENM을 향한 대중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수사 결과에 따라 책임질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한 CJ ENM. 지난 7월 '프로듀스X101'이 종영된 시점부터 무려 4개월 간 지속된 조작 이슈에 분노한 수많은 시청자들의 불신은 이미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전 시즌에 대한 조작 정황까지 포착되면서 배신감의 무게는 '프로듀스' 시리즈가 시작된 2016년부터 4년치가 가중됐다. 수사 결과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상처 받은 '국민 프로듀서'와 연습생들의 마음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책임질 수 있을까.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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