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황서종 "우수인재 영입·공직개방 '착착'…혁신 안착돼 인사처 됐으면"

입력 2019-11-15 17:29   수정 2019-11-16 17:18

“공무원도 전문성을 높여야지요. 인사혁신처가 출범한 지 5년이 됐는데 공무원의 보직 기간이 길어지고, 민간 전문가의 공직 진출이 늘어나는 등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황서종 인사혁신처장(58)을 서울 삼성동 봉은사역 근처 한식당인 부옥당에서 만났다. 황 처장은 지난해 지인의 소개로 부옥당을 알게 된 뒤 신선한 재료의 맛을 살린 음식에 반해 기회가 될 때마다 찾는다고 했다. 흑산도 홍어가 상에 올랐다. 황 처장은 홍어 한 점, 묵은지 한 점, 돼지수육 한 점을 더한 홍어삼합부터 입에 넣었다. 그대로 따라 먹었다. 홍어와 묵은지의 톡 쏘는 맛이 입맛을 돋웠다. 고향이 전남 강진인 황 처장은 “영남에선 문어가 잔칫상에 오르듯이, 호남에선 홍어가 귀한 음식”이라며 “펄(갯벌)이 있는 지역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삭힌 음식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사람의 성장을 지원하는 인사 필요”

고향과 향토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모님 얘기가 화제가 됐다. 황 처장은 “아버지가 전남 장흥에서 중·고교 국어 교사를 하셨다”며 “학생들의 성장을 도우려고 애쓰셨다”고 말했다.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이 아버지 제자”라며 “나중에 연락도 왔던 것을 보면 제자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인사관도 이런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황 처장은 “인사는 개개인의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며 “그러면 공직사회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1988년 총무처를 시작으로 안전행정부 인사실 인사정책관 등 인사업무를 두루 거친 ‘인사통’이다. 황 처장은 “업무의 성과는 그 사람이 가진 장점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며 “장점을 키우고 사람의 성장을 돕는 인사를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승진도 조직과 개인의 성과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처장은 미식가를 자처했다. 그는 “신선한 재료 본연의 맛을 좋아한다”며 “부옥당을 자주 찾는 것도 조미료 맛이 아니라 재료 맛을 제대로 살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럭찜과 조기를 한 점씩 맛보라고 권했다. 생선에 조미료 대신 생고추를 다져서 뿌린 게 특징이다. 비린내도 나지 않고 칼칼한 맛이 더해졌다.

전문성을 갖춰야 책임도 질 수 있어

황 처장이 32년 공직생활 중 인사 업무만 한 것은 아니다. 2008년부터 주(駐)태국대사관 총영사로 2년4개월 근무했다. 고위공무원제도가 도입되면서 당시 중앙공무원교육원(현 국가인재원)과 외교부 간 인사 교류가 있어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부장이던 황 처장이 태국총영사로 파견됐다. 서울대 외교학과 81학번인 황 처장은 외무고시를 거친 동기들과는 달리 행정고시를 택했다. 외시 대신 행시를 택한 이유를 묻자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라며 웃었다. 백지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 오송 주포르투갈 대사가 그의 대학 동기다.

황 처장은 태국에서 돌아온 뒤 공무원노사협력관, 정보기반정책관을 차례로 맡았다.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2011년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하고 시행령을 마련하는 등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익숙지 않은 업무를 갑자기 맡으면서 공무원의 전문성 제고 필요성을 더 절실히 깨달았다고 황 처장은 말했다. 그는 “평생 인사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그 일을 하게 됐다”며 “업무에 대해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고 지시할 수 있도록 몇 달 동안 휴일을 반납하고 공부해야 했다”고 말했다.

황 처장은 공무원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 최소 보직 기간 3년(과장급 이상 2년)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소 3년은 돼야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한 뒤 평가까지 ‘한 사람’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공무원이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 처장은 “1년차에 정책 기획하고, 2년차엔 집행해야 하는데 사람이 1년마다 바뀌는 경우가 많다”며 “기획, 집행하고 평가를 받는 사람이 제각기 다른 경우가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무원이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책임을 못 진다”고 강조했다. 황 처장은 그래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과장급 이상 공무원의 보직 기간이 2010년 평균 1년1개월이었는데 지난해 1년6개월로, 5개월 늘었다”고 했다.

공무원도 소통·협업이 중요

황 처장은 9급 공채시험 선택과목 개편도 공무원의 전문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2022년부터 9급 공채시험 선택과목에서 사회 과학 수학 등 고교과목 3개가 빠지고 직렬·직류별 전문과목 2개를 필수적으로 골라야 한다. 황 처장은 “기대한 고졸 유입효과는 미미한 반면 세법, 회계학 등 전문과목 지식 부족으로 세무직 공무원이 세무 상담 전화 등 업무를 회피하거나 이직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며 “다행히 선택과목 개편 취지에는 공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가에서 ‘공시족’이 늘고 있다는 판단도 통계와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5·7·9급 공채 모두 경쟁률이 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9급 공채는 2016년 53.8 대 1에서 올해 39.2 대 1로 경쟁률이 하락했다. 황 처장은 “원서를 낸 인원이 줄어드는 것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출생아가 줄어든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1992년 73만 명에서 1998년 63만 명으로 6년 만에 출생 인원이 10만 명 줄었다고 설명했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들이 공직에 진출하면서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자질도 달라지고 있다. 황 처장은 “공직사회에서도 밀레니얼 세대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며 “한쪽은 꼰대로 보고 다른 한쪽은 개인중심주의로 보는 시각이 충돌하는 세대 간 차이를 메우기 위해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는 관계 역량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적극 행정 안착됐으면”

황 처장은 인사혁신처의 성과 중 하나로 공직 개방을 꼽았다. 그는 “공직 개방도 전문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며 “민간의 우수한 인재를 영입해서 전문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개방형 직위 445개 중 43%인 193개 직위에서 민간 출신 공무원이 활약하고 있다. 인사혁신처가 출범한 2014년 14%에서 세 배 이상으로 늘었다. ‘경력개방형직위’ 제도도 도입됐다. 2017년부터 국제통상, 남북회담 등 한 분야에서만 일하는 전문직공무원제도를 시행해 100여 명이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일품요리 접시가 비워지자 된장찌개와 갈치김치가 나왔다. 구수한 된장찌개와 톡 쏘는 묵은지가 잘 어울렸다. 세종시에 단신 부임한 황 처장은 직접 요리도 즐겨 한다고 했다. 이 역시 인공조미료 맛이 싫어서다. 그는 “고사리 토란대 넣고 육개장도 끓이고 최근엔 고등어무조림도 만들었는데 꽤 맛이 있더라”며 웃었다. 후식으론 나주배가 나왔다. 부옥당 주인의 고향이 나주라고 했다.

황 처장은 “혁신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면서도 “인사혁신처의 이름에서 혁신이 빠지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직사회에 혁신이 안착됐다는 뜻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적극 행정’도 마찬가지다. 황 처장은 “적극행정 운영규정이 사문화됐으면 좋겠다”며 “공무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국민의 입장에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생각을 갖고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 5주년 맞은 인사혁신처는…

오는 19일 인사혁신처가 출범한 지 5주년을 맞는다. 인사혁신처는 출범 5주년을 기념해 인사혁신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공직 인사제도의 발전 방향을 찾기 위한 세미나를 열 예정이다.

26일 서울 충무로 포스트타워에서 열리는 세미나에선 ‘인사혁신, 미래를 논하다’를 주제로 발표와 토론을 한다. 지난 5년간의 성과와 국가공무원법의 변화를 돌아본 뒤 인사혁신의 새로운 발전 방향을 논의한다.

■ 황서종 인사혁신처장 약력

△1961년 전남 강진 출생
△1985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1997년 미국 인디애나대 행정학 석사
△2012년 서울시립대 행정학 박사
△2003년 중앙인사위원회 기획공보과장
△2008년 외교통상부 주(駐)태국대사관 총영사
△2010년 안전행정부 인사정책관
△2015년 인사혁신처 차장
△2016년 인사혁신처 소청심사 위원회 상임위원
△2018년 인사혁신처장



황서종 인사혁신처장의 단골집 부옥당

점심엔 청국장비빔밥, 저녁엔 홍어삼합 줄서야 먹을 수 있는 곳


부옥당은 서울 삼성동 봉은사역 근처에 있는 한식당이다. 서울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에서 도보로 10분이 채 안 걸린다. 1999년 9월 말부터 21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점심시간엔 된장·청국장비빔밥(8000원)을 먹으려는 직장인들이 줄을 선다. 비빔밥을 시키면 된장·청국장찌개와 제육볶음이 함께 나온다. 비빔밥에 넣을 나물은 콩나물을 기본으로 하고, 나머지 두 가지는 매일 바뀐다.

점심 예약은 안 된다. 점심시간에 비빔밥 외에 다른 일품요리를 먹으려면 미리 전화로 주문해야 한다. 저녁엔 비빔밥은 팔지 않고 홍어 민어 등으로 조리한 술안주를 먹을 수 있다.

2층에 있는 좌식 방을 제외하고 1층 홀에 모두 38석이 마련돼 있다. 토·일요일은 쉰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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